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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남한산 산행기

by 하영일


성남 시내를 가로질러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한때 남한산성에 자주 오르던 시절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게 그곳은 별다른 의미 없는 산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산성역을 지나 언덕길로 접어드니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도심과 달리 이 길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겹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안내판을 살펴보고 혼잣말로 "역사테마길 3코스 당첨"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남한산' 정상에 좌표를 찍는다.


남한산성에 '남한산'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남한산성 갔다 왔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남한산 간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산행은 남한산성 보건소 입구에서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 안내판에서 봤던 현절사(顯節祠)가 눈에 들어온다. '사찰'이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대문 너머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낙네와 내부를 둘러보는 등산객들의 모습도 스친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대문 안으로 흘깃 보던 모습에 호기심 발동해 조심스럽게 발길을 들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반백(半白)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으며 '현절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곳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和)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와 척화파의 수장이었던 김상헌, 정온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현절사

1636년 겨울.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향해 진격했다. 인조는 대신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 원래는 강화도로 가려했지만, 청나라 기마병들이 먼저 길목을 막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몸을 피한 것이었다.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사항전을 칠 계획이었지만, 조선군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급히 산성으로 들어온 터였다. 성 안에는 군량이 부족했고, 혹독한 굶주림에 점차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다. 조정 내에서는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청 황제 홍타이지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자 인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결심하게 된다. 최명길이 항복 국서를 작성했지만, 척화파의 김상헌은 "비굴한 말로 강화해 주기만을 요청한다면 강화 역시 이룰 가능성이 없다."며 이를 거부하고 항복 문서를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세가 이미 기울었다. 47일 만에 성문이 열리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왕조가 자존심을 꺽고 굴욕적인 항복을 선언했던 곳이다. 남한산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었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사당을 나와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얼마 가지 않아 성벽이 보이고, 성 외부로 드나드는 암문이 나타난다. 암문을 나가니 산 아래로 서울 도심이 보이고, 또 다른 성문이 나타난다. "성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구조다.


그늘 없는 성벽길이 이어지고, 얕은 언덕길 올라 서니 '남한산'이라 적힌 정상석이 나타난다. 봉우리 아닌 평평한 곳에 선 게 특이하지만, 돌은 매끈하고 참하게 생겼다.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 찍어보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남는다. "정말 여기가 정상 정상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몇 발짝 옮겨 밋밋한 언덕 끝자락에 서니,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성벽과 파란 하늘에 한가로이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보인다. 지금은 하늘과 땅 모두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400년 전, 이곳에선 청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조선이 생사를 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병자호란은 왜 일어났으며, 조선은 왜 청나라의 침입을 막지 못했는가?

조선은 당시 군사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의 나라로 섬기던 명(明)과 떠오르는 군사강국 청(淸) 사이에서 전략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병자호란 이후 긴 세월 흘렀지만, 우리가 놓인 지리적 위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6.25 이후 70여 년간 한반도에는 전쟁이 없었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이렇게 오랜 평화를 누린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너무 평화로운 세상에 살다 보니,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평화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킬 힘이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봉암성
남한산 정상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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