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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Jul 13. 2024

아차! 산

아차산(峨嵯山) 산행기

정난정 조선 최고의 점쟁이 홍계관을 집으로 불렀다.


요즘 들어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자신의 앞날이 어떨지 점을 쳐 보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권세를 누리 윤원형의 정실부인까지 되었으니, 앞날에 꽃길만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자신의 앞날을 점치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홍계관은 정난정이 독살될 운명이라는 점괘를 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윤원형은 "민심을 어지럽히는 홍계관을 처벌해야 한다"라고 임금에게 주청을 올렸다.

임금은 홍계관을 처벌하기 전에 이 자가 훌륭한 점술가인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기꾼인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임금은 안이 보이지 않는 나무상자를 홍계관 앞에 가져다 놓고, 그 안에 든 게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어명을 내렸다.


홍계관은 그 안에 쥐가 들어 있다고 아뢴다. 깜짝 놀란 임금은 한 번 더 묻는다.  "그럼 쥐가 몇 마리인지 맞춰보거라." 홍계관은 점괘에 따라 "세 마리입니다"라고 답했다.


상자 안에는 분명 쥐가 한 마리리인데 세 마리라고 이야기하는 걸 본 왕은 "네놈은 사람을 속이는 요망한 점쟁이가 분명하다."라고 화를 내며 "당장 저놈을 끌고 가 처형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홍계관은 변명할 도 없이 형장으로 끌려갔다.


당장 죽음을 맞이하게 된 홍계관은 자신의 점괘를 짚어보니, 한식경 정도만 사형을 미루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홍계관은 형리에게 잠시만 미뤄달라 간곡한 부탁을 했다.

집행관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마지막 소원 한번 들어준들 어떠랴."는 생각에 망나니에게 칼을 내려놓으라고 명했다.


그 시각 임금은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상자 안에든 쥐의 배를 갈라 보게 했다.

그런데 뱃속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홍계관의 말대로 쥐가 세 마리였던 것이었다. 크게 놀란 임금은 "홍계관은 신통력 있는 자가 분명하다. 속히 가서 처형을 멈추게 하라"고 말했다.  


어명을 전달 받은 전령이 급히 말을 몰 형장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보니 망나니가 금방이라도 홍계관의 목을 칠 듯 칼춤을 추고 있었다.


"어명이요. 사형을 중지하라."

전령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지만, 형리는 형집행을 미뤘던 게 문제 될 것을 두려워해, 망나니에게 사형을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이윽고 망나니의 칼이 바람을 갈랐다. 전령이 도착했을 때 홍계관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점(神占)이 아깝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일을 보고 받은 명종은 "아차!" 하며 크게 안타까워했고, 그 후로 이곳이 '아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진다.


아차산이라 새겨진 바윗돌 앞에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완만한 바위 언덕을 따라 잠시 오르니, 고구려정(高句麗亭)이라 적힌 누각이 보인다.


문화재적 가치 있는 오래된 누각은 아니지만, 조망 좋은 곳에 세워졌다. 안개 낀 것처럼 뿌하늘 탓에 경관이 선명하지 않아도, 정자 앞으로 막힘이 없으니 속 뚫린다.


천호대교 뒤로 롯데빌딩이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더라만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위용을 볼 수 있을 텐데...." 도심에 위치한 산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경치가 일품인데, 이곳 또한 한강과 도심 경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생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산 아래 경관을 살필 수 있는 전망대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왼쪽 전망대에서 빌딩숲 도심이 보이고, 오른쪽에서는 한강과 그 위로 걸쳐진 다리가 한 폭 그림처럼 멋지다. 몇천 년을 쉬지 않고 흘렀을 저 강물이야 말로 한양땅의 생명수였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오르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루(堡壘)가 나타난다. 아차산 일대에 17개의 보루가 있다고 한다. 보루에는 소규모 병력이 상주하며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주변을 살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일부 보루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으로 관리되는 탓에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봉우리마다 올라보지 못하는  아쉽지만, 시원한 조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삼국이 다투던 군사적 요충지답게 산 전체가 전쟁에 대비한 요새 같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으니, 너른 한양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이곳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서울이 이렇게 발전하고 흥할 것을 알고, 삼국이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것일까.

홍계관처럼 제 아무리 신통한 점쟁이라도 몇백 년 뒤에 한양이 이런 모습으로 천지개벽하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 안내판 앞에 이르렀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채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여기가 정상이 맞는가 싶어 앞뒤로 살펴보지만, 그 흔한 정상석 하나 보이지 않는다.

앞서 봤던 문화재 안내판과 똑같이 생긴 철판에 "해발 297.5m 아차산 정상"이라는 표시와 아차산 3보루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을 뿐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아차산이라 적힌 돌비석을 분명 봤었는데, 정상에는 없는 게 이상하다. 지나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듯 용마산 방향으로 향한다.


블랙야크 등산앱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정상석 인증사진 한 장 못 찍어서 그런지 허전한 마음만 크게 남는다. 하루종일 남의 일 해 주고 품삯 한 푼 못 받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용마산까지 긴 산행을 하기에는 준비가 안 됐고, 마음도 내키지도 않는다.


썬크림 범벅된 땀을 연신 닦아 내지만, 축축해진 셔츠가 등짝에 달라붙어 꿉꿉함 마저 느껴진다.

이럴 때는 냉면집으로 달려가 얼음 동동 띄운 냉면 한 사발 들이키는 게 최선의 선택이란 생각으로 급히 발길을 돌린다.

아차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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