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7
식수가 떨어져 야단을 지기는 그 판국에 온 들판을 적셔 모를 심으니까 그 수세는 말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로서는 천하제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때라면 보름이 못 가 끝이 나는 모심기가 이 해에는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이것을 본 다른 동리 사람들도 파레를 걸어 모심기를 했다. 낙동강 지류인 고로천 줄기에는 대개가 다 파레를 걸어 모를 심었다.
말하자면, 우리 마을이 시범 부락이다. 한 노인의 어쭙잖은 말이 온 조선에 퍼지게 되자 그 말이 조선 총독부까지 알려져서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해서 우리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불과 같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도 전력을 기울여 일을 했다. 그리하여 화수동 들판 위에는 탐스럽게 자라는 벼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월달이 지나 유월달이 다가와도 비가 올 기미는 전연 없다. 하다가 보니 사람들은 일에 쪼들리고 가뭄에 시달리어 죽을 지경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연세가 많은 노인네들은 졸도를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굶주림과 고된 탓도 있겠지만 그 참 원인은 열사병이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도중에 포기를 하자는 사람도 없진 않았다. 강바닥에서 나오는 물마저 점점 줄어들어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중도지패는 할 수가 없었다.
유월 삼복더위에도 꼬박 물을 푸고 굴사를 했다. 열일곱 어린 나이기는 하나 나는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꿋꿋하게 참고 견디었다. 내 또래의 동유들이 두 명이 더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가 하루 세끼 죽을 나르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나는 열일곱 살에 백칠십칠의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조속한 편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다들 나를 장정 취급을 하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남달리 입이 짧은 편이었다. 하루 세끼 먹는 죽 때가 되면 저절로 이마에 주름살이 진다. 배가 아무리 고플 때라도 죽은 죽어도 먹기가 싫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참 쌀진 아이라고까지 말을 들었다. 그런 내가 석 달 열흘을 꼬박 물을 펐다.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나가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고통도 고됨도 참으면서 견디었다.
음력 칠월 하순 어느 날 새벽이다. 어디에선가 바람소리 같은 무슨 소리가 굴사 도랑에서 솨~하고 들려왔다. 잠이 깰 정도로 그 소리가 크게 들여왔다. 사람들은 다들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렸다. 그 소리는 틀림없이 물소리가 분명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굴사 도랑을 달려갔다. 가기가 바쁘게 그는 곧 물이다 물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은 다 그리로 달려갔다. 사실 물이다. 그렇다면 그 물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물인가 말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꼭 꿈같이만 느껴졌다. 일 년여 꼬박 가물었는데 그렇게 많은 물이 어떻게 생겨났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고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의 양도 여간 많지가 않다. 그 바싹 마른 강바닥에 그렇게 많은 양의 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는 곳에선가 갑작스레 크나큰 폭우가 쏟아진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물이 쏟아질 리 만무하다. 두 길이나 되는 구사 도랑에 넘쳐흐를 정도였으니까. 그 물의 출처야 어디던 간에 피골이 상접하리만큼 구수작업을 하던 우리로서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 새벽에 모든 도구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꼭 석 달 열흘 만에 집 구경을 해본다. 들판에 나가보니 그렇게 가물었는데도 온 들판에 벼들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대풍이다. 그런 데다가 별안간 많은 물이 들어가니 벼들은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쑥쑥 자란다. 온 농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확천금이라도 한 것처럼 기쁘다.
그런데, 일주일 지나서도 그 물의 출처는 전연 알 수가 없다. 이십일이 넘어서야 겨우 그 물의 출처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물은 고로면 마금창에 자리하고 있는 석산동이라는 마을에서 별안간 소나기가 폭우로 변하여 한 시간 남짓 온 비가 이백 밀리나 내렸다고 했다. 게다가 낡은 저수지, 아니 작은 못이 하나 터지는 바람에 백리의 강을 적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석산동이라는 산골 마을은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까지 떠내려 갔다고 했다. 그 해의 하늘은 그와 같이 불공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