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아니 그것으로 물을 퍼서 모심기를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머야 두 파래 물만 있으면 모심기를 하고도 남을 걸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것 참 좋은 말씀이요, 우리도 그렇게 해 봅시다. 기술이 어느 정도 필요한 지 몰라도 힘으로 하는 일 그거야 못하겠소.
노인장의 충청도 이야기에 좌석은 떠들썩하다. 그러나 중년층 이하 젊은 사람들은 다들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록 된다고 하더라도 날씨가 계속 가문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자는 노인들과 젊은 사람들의 안된다는 의견이 엇갈리어 좌석은 또 한 번 떠들썩하다. 그날 하루도 옥신각신 입씨름만 하다가 하루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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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또다시 대동을 일으켰다. 이 날은 마을 구장까지 참석을 시켰다. 구장의 말에 의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모를 심으라는 명령이 조선 총독부로부터 내려졌다고 했다. 총독부라면 산천도 떨었던 그 시절, 하다가 안되면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그들의 명령은 거역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구장이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도 각가 의견들이 달라 어제와 같이 옥신각신 하였다. 구장 김복근씨가 앞에 나서 말했다. “상부의 지시가 그러하니 어떻게 합니까? 하다가 안되면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시작은 해 봅시다. 저 역시도 꼭 된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면 죽는 형용은 내봐야지요. 하니까 다소 고생이 되드라도 부역하는 셈 치고 한 번 해 봅시다.” 하였다. 말인 즉, 왜놈들의 강요에 못 이겨서 억지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못한다고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남자란 남자는 총동원되어 그다음 날부터 작업에 임하게 되었다. 굴사를 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갖추고 아예 강바닥에서 자가며 일을 하기로 결정을 하여, 이부자리까지도 한꺼번에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식사도 현장에 내어다가 먹기로 하였다. 기왕에 시작한 일 도진 마음으로 한 번 해보자는 뜻에서 그렇게 착수를 한 것이다.
먼저 굴사를 시작했다. 사십여 명이 일렬로 붙어 강바닥을 파헤치니 생각 보다가 많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 물은 봇도랑 보다가 조금 낮은 곳에 깔려 있었다. 그러므로 그 물이 봇도랑으로 넘쳐흐르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 고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노인장의 말씀대로 양철통을 구하여 파레방퉁이를 만들었다. 그 방퉁이의 형은 네모가 아니 세모이다. 그리고 양쪽에 끈을 달아 방퉁이 하나에 두 사람이 붙어서 일을 해야만 한다.
물 웅덩이를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파래 방퉁이 둘을 대어 물을 푸기 시작했다.
물을 푸는 데는 아무런 기술이 없어도 힘만 있으면 되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물을 퍼보니까 노인장의 말 그대로 두 파래의 물의 량이 여간 많지가 않다. 거의 한 봇도랑 물이 가까울 정도이다. 계속해서 그 정도의 물이 들어간다면 모를 심는 데는 그다지 걱정을 안 해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파레질이란 여간 중노동이 아니다. 삼십 분 정도만 물을 퍼올려도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을 저오이다. 한참 시절이 아니고서는 견디어 낼 수가 없다. 세상 힘든 일은 파레질이다.
그래서 사십여 명 사람 중에 물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열두 명뿐이었다. 그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굴사를 하고 열두 명만 이 교대로 물을 펐다. 나 역시 그 물 푸는 조에 들어 있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지만 그래도 나대로는 성숙한 편이어서 이십이 넘은 장정들과도 힘을 겨루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애송이다.
교대 교대로 물을 푸기는 하나 하루 종일 물을 푸면 두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어깨뿐만 아니라 옆구리가 쥐어트는 것 같다. 그것도 배가 부르게 먹고 일을 하면 또 모른다. 하루 세끼의 죽을 먹고 그와 같은 중노동을 한다. 배가 고픈 것은 물을 푸는 사람뿐만 아니다. 몇몇 노인네들은 굴사를 하다고 졸도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마을 앞들판에는 세상 홍일점으로 모심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