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고향의 추억 5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5

음력 사월달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봄갈이가 끝이나도 가뭄은 연속이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가을을 연상케 하리만큼 서늘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문 날씨가 이날까지 계속되니 무려 칠 개월이나 꼬박 가문 셈이다. 하다가 보니 땅바닥에 축기라고는 전연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해 가을에 파종된 보리싹 씨마저도 전연 자라지를 않는다. 오히려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보리 흉년은 이미 든 것 보다가 더 명확하다. 게으름뱅이 내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탈이다.

수세가 좋기로 이름난 낙동강 지류인 고로천 바닥도 먼지가 날 정도로 바싹 말라 있다. 겨울에도 눈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늦은 봄까지 계속 가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풍년이 들까 기다리는 농민들의 심정은 날이 갈수록 착잡하기만 하다. 일이 손에 잡힐 턱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밥만 먹고 나면 동구밖 정자나무 그늘 밑으로 모여들어 부질없는 희담만을 주고받다가 하루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농사만을 주업으로 삼고 있던 우리로서는 애간장을 태우지 않을 수가 없다.

워낙 가물다가 보니 왜놈들의 관공소로부터도 가뭄에 대책을 세우라고 날마다 각동리에 나가 방정을 떨곤 하였다. 대책이 있을 턱이 없다.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해결이 된다. 이해의 가뭄은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전국적이었다. 그래서, 정부에서까지도 그렇게 몸이 달아 설친다.

수세가 좋기로 이름난 화수동 마을이 그 정도이니 한근한(변변치 않은) 다른 곳이야 말할 것도 없다. 더러 고장에서는 식수까지도 떨어져서 야단들이다. 못자리 판이 바싹 말라붙어 지금 비가 온데도 모심기를 못할 곳이 허다하다. 그런 곳에 비유하면 우리 마을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듯이 이와 같은 가문 해에는 흰소리를 칠 수도 있다. 각처 주위를 돌아다보아도 물이 흔하기로는 우리 고장이 제일인 듯싶다. 모심기할 물이 없어서 그렇지 못자리 물과 식수만은 그다지 구애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가뭄이 계속된다면 우리 마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보리 흉년에 겹쳐 대농까지 망치게 된다면 그야말로 몰게죽음(갑작스럽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다. 없는 자는 굶어서 죽을 것이요 있는 자는 틈에 끼여 졸려서 죽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마을에서는 벌서부터 좀도둑이 생겨 민심을 동요케 한다고 했다. 태공 아닌 태공이 되어 아무런 걱정 없이 놀기만 하던 우리 마을 사람들도 모심기 철이 다가오자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모심기는 해야 하고 비는 오지 않고 강바닥은 먼지가 날 정도이니 걱정을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걱정이 안 된다면 그것은 목석이요 사람이 아니다.

음력 사월 하순(양력 5월 말에서 6월 초순 정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심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경상도는 통상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 사이에 모심기 시작). 오늘내일하고 비를 기다려 보았으나 비가 올 기미는 전연 찾아볼 수 없고 얄미운 서풍만이 소슬하게 불어오니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 칠 년 대한이 있었다고는 하였지만, 이해에는 아침 이슬마저도 없었다. 동민들이 모여 앉아 가뭄대책을 의논한데도 뾰죽한 수가 있을 턱이 없다.

기계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기껏해야 굴사를 하는 그것밖에는 없다. 강바닥을 파헤쳐 설사 물이 나온다 손 치더라도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무슨 재주로 밖으로 끌어 올리나 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같이 양수기가 있다면야 말도 하지 않는다. 대동을 부쳐 며칠간 공론을 해도 이렇다 할 의견이 나오지를 않았다. 용뚜레를 가지고 물을 푼다고 해도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바가지 몰로 어떻게 모심기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공론을 하다가도 웃음이 터져 나와 깔깔, 바로 그때 한 노인장이 말씀했다.

“어느 해 여름 충청도 어느 곳에 가니까 양철통으로 물을 푸더구만, 그 물의 량은 여간 많지가 않아. 하도 이상해서 나는 얼마 동안 앉아 그 물 푸는 구경을 했는기라. 그 방퉁이에 끈을 매어 두 사람이 손을 맞춰 푸는데 힘은 들겠지만 신이 날 정도야.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그 기구의 이름을 물어보았지. 그러자 그들의 대답이 왈 ‘허허 이 노인 좀 보소 조선 사람이 파래 방퉁이를 모르다니’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물 푸는 기구의 이름이 파래 방퉁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리고 그 물을 퍼올리는 높이는 한 길이 넘어 보이더구먼. 방퉁이 네 귀에 새끼줄로 달아 물을 푸는데 그 참 구경거리야. 물을 뜰 때는 솩, 물이 떨어질 때는 철썩, 솩, 철석, 솩, 철석... 신이 난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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