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고향의 추억 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3


사나이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 되면 호패를 찬다고 했거늘 나는 지금 열일곱 살이다. 만시지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자손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오솔길을 지나 넘은곡섬배기를 넘어섰다.


음력 삼월달이니 산골마을로서는 아직도 초춘이다. 사월달이 되어서야 해빙을 한다는 우리 마을, 그래도 길 옆 양지쪽 방뚝 밑에는 하마 벌써 성급한 할미꽃들이 만개하여 수줍은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솔미기 골짜기에서 불어 나오는 차가운 응달 바람은 가슴을 여미게 하였다.


잠시 후 옥녀봉 산기슭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우리의 모든 농토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제는 큰 물이 난다고 해도 그다지 큰 피해가 없는 그러한 완전답에 가깝다. 그 농토 모두가 우리 할아버님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던 우리가 이제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그야말로 졸부가 되었다. 음지가 양지로 변한 것이라고나 할까. 재해가 별로 없는 웬만한 해에는 오십 석의 벼를 너끈히 거두어드릴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화수동 사람들은 할아버님의 인내력을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품 하나 사지 않고 혼자 힘으로 그와 같은 대농장을 이루기까지에는 꼬박 사십 년이 넘게 걸렸으니 그 도진 끈기야 말로 사람이 아니면 모르겠으나, 사람인 이상 감탄치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물막이 방천뚝을 한 바퀴 돌아다보면 한 사람의 힘으로서 이루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 번 가서 보면 만리장성인들 저 이상 더하랴 싶을 정도이다. 그것도 일 년에 이루어진 일이라면 말도 하지 않는다.


큰 물이 날 때마다 우리의 방천뚝은 연방 떠내려갔다. 대홍수가 날 때에는 언제 거기에 논이 있었느냐는 듯이 싹 쓸어갔다. 본래의 형태가 자갈 무더기로 변해 있을 때가 수십 번이다. 그러나 우리 할아버님은 조금도 좌절하지를 않았다.


칠전팔기라는 말 따위는 어린이들의 장난에 불과하다. 쓰러진 방천뚝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한 것이 적어도 삼십 번은 넘는다. 내가 알기로도 열 번이 넘었으니까.


소를 세운 뒤 방천뚝에 지게를 받쳐놓고 지나간 추억들을 더음어 보니 이 개간지에 전력을 기울이신 우리 할아버님의 그 모습이 나의 흉중을 찔렀다. 고희가 지나, 서산낙조와도 같은 우리 할아버님. 이날까지도 여기에 전력을 다하는 그 뜻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후손인 우리들을 위해서이다.


나는 할아버님의 모습을 그리면서 소목에 멍에를 걸어 논을 갈기 시작했다. 두 팔에 힘을 주어 탁주손을 꼭 거머쥐었다. 일에 능숙한 우리의 늙은 암소는 ‘어디 일노’라고 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제자락에 척척 들어선다.


처음으로 일을 배우는 나로서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엇부리기 황소같으면 초보자인 나로서는 휘어잡기가 어려울 텐데 그럴 수 없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이상하게도 내가 잡은 훌정 끝은 제 마음대로 이리 삐뚤 저리 삐뚤 좀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지를 않는다. 하다가 보니 내가 갈아놓은 논바닥은 온통 양어리(덜 갈린 것) 천지였다. 단 한 자락도 제대로 갈린 것이 없었다. 서투른 솜씨의 탓도 있겠지만, 첫째로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가물어서 논바닥이 굳어져서 그러한 변괴가 생긴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문 날씨가 이날까지 계속되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으니 땅바닥인들 오직 할까 하는 것이다.


논바닥이 온통 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양어리가 생기게 된 것은 내 탓이라기보다는 날씨의 탓이 더 크다고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논바닥을 다 버려놨으니 그것이 큰일이다. 내가 갈아놓은 논바닥을 우리 할아버님이 보았더라면 기절초풍을 할지도 모른다. 논갈이라고 해놓은 것이 호미로 그린 것만도 못하게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논을 간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친 것처럼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렇게 해서는 될 수가 없다. 할아버님의 꾸지람 보다가도 첫째 논바닥을 버려놨으니 더 이상 논갈이를 할 수가 없다. 논을 망치는 것뿐만 아니다. 내 훌정에 매달리어 억지로 놀리는 통에 우리 늙은 암소도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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