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고향의 추억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가을이 되었다. 추수를 하여 탈곡을 해 보았다.


우리는 이 해에 모든 논에다가 신품종 일진(193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육성되어 농가에 보급된 품종, 수원농사시험장에서 일본 도입종과 재래종을 교배하여 개발)이라는 벼를 심었다. 곡수가 한없이 많이 났다. 평년작의 배에 가까울 정도였다.


한마디로 대풍이다. 곡수도 많이 났지만 쌀의 질이 특이하게 좋다. 찹쌀을 능가할 정도이다. 풍년을 맞은 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다. 신품종 일진이라는 벼를 심은 사람들은 다들 농사를 잘 지었다. 그리고 날씨가 좋았던 관계로 재래종 벼들도 다 잘 되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년 농사를 한 해에 다 지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우리 할머님께서도 “예야, 금년에는 네가 농사를 짓더니만 이렇게 농사가 잘 되었구나” 하시면서 칭찬의 말씀까지 하였다. 배의 소출이 났으니까 누구나가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모 한 포기 꼽지 못한 주변 고장의 사람들은 다들 실의에 빠져 우리 고장을 부러워했다.


가을 한풍 때문에 항상 실농을 하던 우리였는데 이 해에는 음지가 양지로 변한 셈이다. 구두쇠라고 이름난 사람들도 이 해 가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고사떡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돌리곤 하였다. 다들 잔치 분위기였다. 어느 집 누구네 할 것 없이 다들 추수에 감사한 뜻에서 고사를 지낸다고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러므로 오가는 인정들도 전자와는 다르다. 내실, 사랑방 어디 할 것 없이 오가다 들어보면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석양 나절이 되면 앞 주막거리에서는 고성방가가 터져 나오고 술에 만취되어 갈지자걸음으로 거리를 쓸고 다니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매정하게 지내오던 이웃 간에도 이제는 전자와는 판이하다. 독가촌 아닌 독가촌에서 살다시피 했던 우리에게도 우리도 잘 살게 되니 그러한 기색이 전연 없다. 오가는 인정 속에 삶의 보람을 맛볼 수가 있었다.


전화위복으로 가문 것이 우리에게는 복이 된 셈이다. 요순우탕이 부럽지가 않다. 올 같은 해가 삼 년 만에 한 번씩 있어도 남 부러울 것이 없다. 이 해에는 오륙두락에 답을 가진 사람들도 두 해의 식량이 될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풍년이 들어서 그러한 탓도 있겠지만 첫째는 신품종 일진이라는 벼를 심어서 풍년을 만난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두 번 째는 그 보잘것없는 파레방퉁이가 풍년을 가져다준 것이다.


술과 떡으로 인정을 나누고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을 무렵, 다시 말하자면 일천구백삼십구 년(1939년) 시월 하순 뜻하지 않게도 우리 농민들에는 또 한 차례의 한풍이 불어왔다.


농사를 지은 전 농민들에게 많은 공출이 나왔다. 이 공출이라는 것은 전년에 그 전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사짓는 두락에 따라 매호당 한 두 가마씩은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 나온 공출은 그것이 아니다. 농사지은 전량을 다 바쳐도 모자랄 정도이다. 우리는 전년에 비하면 꼭 삼십 배가 나왔다. 산골 논 십여 두락에 아무리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하여도 그만한 벼가 날 턱이 없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많은 양의 공출이 나오지를 않았는가.


구장에게 공출 쪽지를 받은 나로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무엇을 근거 삼아 그와 같은 수자를 내어 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물 때 물을 푸고 할 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일본놈들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도 궁금하여 다른 집들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이웃을 나가 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노는 갑산댁으로 먼저 발길을 돌려보았다.


그 댁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논다. 왜냐하면 그 댁 큰 아들 덕리라는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야발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그 댁을 많이 찾는다. 이 날도 그 댁 마당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 간에 오가는 언행이 매우 거칠다. 얼른 들어보아도 그들의 언질은 공출 때문인 듯하다. 나는 그들의 옆에 가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바로 그때이다. 옥산댁 태방우가 내게로 달려와서 내 본명을 부르면서 “너네는 이번에 얼마나 나왔노?” 하였다. 그의 말은 우리 집에 나온 공출량을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거짓말로 우리는 세 가마가 나왔다고 했다. 그러자 태방우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우면서 “뭐, 세 가마라고? 그럴 수가 있나. 우리는 열 다섯 가마나 나왔는기라” 노기 띤 말투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마당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질 않았다. 마을에서 희담 계장이라고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 으레 희담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엉뚱한 태방우만은 내 말을 참인 것으로 알고 그렇게 안달이 나고 있다. 그의 나이는 나보다가 세 살이 더 많다. 하지만, 태방우는 너무나도 고지식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약간 모자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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