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하는 삶
아니 진짜 공감을 못하는 거야 아니면 안하는 거야? 너 로못이야?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항상 듣던 이야기다. 공감이란 네이버 지식 출처에 따르면 [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처럼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 이라고 한다. 즉, 나의 말로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상대방의 말에 기본적인 반응과 호응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정적 교류가 공감인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상대방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 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기분을 알겠지만 거기에 맞춰서 호응하고 반응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로그인 and 로그아웃 이것이 바로 내가 고안해낸 장치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이 사람의 감정과 현재 상태에 대하여 로그인 해야 한다. 그렇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감정을 주의깊게 분석하여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을 해준다. 이러한 로그인을 풀어서 설명하면 학습된 반응법 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살아오면서 어떤 말과 행동을 보고 들었을 때 내가 다시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그 사람이 공감받고 있음을 알게 될까를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게 된 반응법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공감을 하고 있고 원하는 반응을 주었다는 것이 확인이 되면 이내 로그아웃을 한다. 이 로그아웃은 이제 상대방의 감정과 말에 대해서 심도깊은 분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로그아웃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편하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올때 보통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들을 나는 마음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차단막을 만들어 나에게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나는 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상대방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상대방을 공감하면서 원하는 대답과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그것이 쉽게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고민이나 본인의 감정을 토로하고 얘기했을 때 그것에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지 모르니까 나는 거기서 나의 판단과 감정을 같이 꺼냈다. 나의 판단과 감정을 같이 꺼내버리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보통의 사람이 나에게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였냐 자기는 잘 못했다 라는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은 본인이 시험 공부를 덜하여 매우 걱정되고 긴장됨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도 이번에 공부 잘 못했어 혹은 이번에 시험 어려우면 다같이 어려울거야 걱정하지마 등등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반응을 하지 못하고 공부하기 싫으면 뭐 딱히 안해도 되지 않나? 이런식으로 나의 생각과 판단을 꺼내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성의없어 보이는 대답이 된다.
보통 상대방이 공감을 원할 때는 첫 번째로 나의 입이 아니라 귀가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에 대응되는 반응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어야 나와 상대방 사이의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깨우치는데 거의 20대를 모두 쓴 것 같다.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내가 듣고 반응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그리고 배움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노력과 배움은 사람을 대할 때 얻게 되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경험은 보통은 쓰디 쓴 약같은 경험이었다.
공감을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공감할 마음도 없었고 거기에 맞춰서 공감의 형식과 공식을 내가 전혀 몰랐던 거 같다. 조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진심으로 공감을 하지 않아도 그 형식과 공식에 맞추어 나의 행동과 말을 하면 상대방은 내가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100%는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