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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우아빠 May 09. 2021

3.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기까지

도대체 왜 사업계획서라는 걸 써야 하는지...

한국에서 바이오, 제약업계는 상당히 좁은 사회이다.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숨막힐 정도로 좁다는 뜻이다. 전공학과 동기, 대학원 실험실 선후배, 제약사나 바이오벤처에서 일했던 동료들을 통해 항상 평가를 전해듣거나 직접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도 임직원을 채용할 때는 항상 레퍼런스 체크를 하게 되고, 대학원 실험실 지도교수님이나 직전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인을 통하면 업무 역량, 성격, 과거에 어디에 다녔는지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 회사 연구원들과 탕비실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지금부터라도 단어 하나를 항상 의식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것은 "평판"이다. 단어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전문성 있는 업무 역량이 무엇인지, 실제로 어떤 성과물을 만들어봤는지, 동료들과는 어떤 식으로 협업하는지 등등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것들이 녹아들면서 단단히 굳어져버리는 무시무시한 단어이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표이사도 이러한 평판으로 먼저 평가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벤처캐피탈 같은 투자기관의 심사역들은 일단 대표이사가 과거에 어디에 몸담았는지, 또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경영에 적합한 경험을 했었는지 등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어느 정도 선입관을 가지고서 사업계획서를 들여다보게 된다. 필자도 모 투자기관의 심사역 분과 만나서 얘기하던 중, 필자가 이전에 몸담았던 바이오벤처의 사업개발 업무를 몇년 후에 그 심사역 분이 다시 맡아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나오셨던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님이 OO제약회사와 공동연구 및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계약서 조항들을 살펴봤는데 OO벤처에 유리하도록 잘 협상하셨던데요." 그 말을 들으면서 조금 움찔하기는 했다. 사실 OO제약회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얻어보려고 악전고투한 결과물일 뿐이었고, 전적으로 OO벤처에 유리한 구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뭏든 이처럼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평판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준비할 것이 사업계획서이다. 왜 그렇게 사업계획서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걸까? 첫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계획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 둘째, 투자유치를 위해 심사역 앞에서 발표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세째, 공동연구, 기술이전 등 사업협력을 위한 자료로도 필요하다. 


<사업계획서 스토리라인>


투자업무 경험을 되살려보면 잘 작성한 사업계획서들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일단 기본적인 도식(그림)을 잘 활용하고, 경쟁자나 경쟁기술과의 비교 항목들을 간결하게 서술하며,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일관된 구성이나 폰트 등 디자인도 잘 통일하면서 디테일까지 신경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봤던 것은 역시 "플랫폼 기술"의 확보 여부였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정의하는 플랫폼은 IT 분야, O2O 등에서의 플랫폼과는 다르다. 후자가 공급자와 수요자 등 복수그룹이 참여해 각 그룹이 얻고자 하는 가치를 공정한 거래를 통해 교환할 수 있도록  구축된 생태계를 뜻한다면, 전자는 다양한 약물 타겟을 대상으로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파생시킬 수 있는 기반기술의 뜻에 가깝다. ADC(Antibody Drug Conjugate),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 PROTAC(Proteolysis Targeting Chimera), DEL(DNA-encoded Library)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야 할까?


<플랫폼 기술의 필요성>


첫째, 위에서의 그림처럼 연구개발 측면, 사업개발 측면, 그리고 회사 경영 측면에서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최근 바이오벤처 설립 케이스를 보면 임상개발 단계까지 진전된 파이프라인을 메인으로 도입해서 일단 사업을 개시하고, 후속으로 별도의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서 초기 파이프라인들로 뒷받침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투자유치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플랫폼 기술이 아닌, 개별적인 타겟/파이프라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할 경우 투자기관들은 투자의 선행조건으로서 보다 더 진전된 연구개발 성과를 요구하게 된다. Series A와 같은 초기 투자단계에서도 적어도 전임상에 진입했거나 진행중이어야 하고, 임상단계까지 요구받기도 한다. 그에 반해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할 경우에는 그 기술이 차별화되고, 초기 검증이 조금은 되어 있다면 연구개발 진도가 초기에 머무르는 경우라도 "포트폴리오" 확보 차원에서 그 가능성 만을 보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즉, 투자기관의 심사역도 펀드나 회사의 목적 때문에 해야 할 숙제가 있는데, 그것에 부합되고 투자대상인 바이오벤처가 최소한 국내에서라도 선두주자라고 하면 전략적으로 쉽게 투자를 결정하고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플랫폼 기술은 나중에 바이오벤처가 코스닥에 상장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NRDO (No Research Development Only) 모델로 성공적인 사업화 실적이 있는 바이오벤처의 경우에도 자체 연구시설과 플랫폼 기술이 확보되지 않으면 연구, 사업, 경영의 영속성 측면에서 감점을 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술을 본인이 개발했거나, 외부에서 싸워서 쟁취해 오거나, 개발자와 사귀면서 호감도를 높여 얻어낼 수 있거나 어떤 경우든 그런 플랫폼 기술이 차별화되는 측면이 있다면 바로 창업을 고려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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