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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우아빠 May 12. 2021

4.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까지

인동초 같은 삶과 연구...

나는 결혼을 30대 후반에야 할 수 있었다. 아이들까지 있는 동기들에 비해 가뜩이나 늦은 결혼인데다가 아내가 나이가 더 어린 편이라, 결혼식 사진을 보면 신부 친구들은 화사한데 반해, 신랑 친구들은 모두 늙수레한 모습이다. 장모님이 이 사진을 보실 때마다 늙은 사위 얻었다고, 그리고 장모님 자신이랑 비슷한 세대인 것 티내지 말라고 놀리면서 젊게 하고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사실 억울한 면이 있는 게, 늦게 결혼한 건 절대 내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초기 직장에 다니면서 첫눈에 반했던 옆자리 직장동료(미래의 아내)였지만 여간해서는 씨알도 안먹힐 철벽을 치는 스타일이 분명했다. 설익은 단계에서 괜히 고백을 했다가는 단숨에 차이고, 서먹한 분위기로 업무를 같이 하다가, 결국 둘 중 한명은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영영 남이 되는 시나리오로 흘러갈게 뻔했다. 그래서 사귀기 2개년 계획을 세워서 치밀하게 준비 작업을 하고 성급히 덤벼들지 않으면서 친밀감을 쌓았고, 둘만의 저녁식사나 영화 관람 요청을 매번 매몰차게 차일 때마다 얹혀 살던 큰형 집에서 넋두리를 하면서 버텼다. 덕분에 큰형에게 "인동초"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동초>


회사 초기에 파이프라인들을 구축하면서도 연애, 결혼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초기에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타겟에 적용해서 약물을 개발해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경영자나 연구소장의 기분이나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몇년간을 꾸준하게 진행해야만 조금이라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바이오기업이나 제약기업의 선례를 봐도 그랬다. 어떤 기업들은 10여년이 넘도록 특정 파이프라인의 연구, 개발, 임상에 집중했지만 결국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았고 그를 보완할 수 있는 후속 플랫폼 기술이나 파이프라인이 부족한 상황에 몰리면서 휘청거리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기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플랫폼 기술과 파이프라인으로 갈아타면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10여년이 넘도록 임상 후기, 제품 승인 등의 목표를 완결짓지 못하고 정체되는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결국 인동초 같은 꾸준함, 그리고 Backup Plan을 위한 Seed를 동시에 가져가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했다.


우리도 자문교수진, 설립자들과 함께 거진 2개월 간 치열하게 협의하면서 하나하나 배제해 나가거나 편입시켜 나갔다. 물론 3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초기에 진행했던 파이프라인 상당수가 변경되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은 포트폴리오 전략이었다. 이전의 글에서 S교수가 제안했던 것처럼 현실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타겟 위주로 선도 파이프라인을 구축했고, first-in-class 계열의 신규 타겟은 그 뒤를 따라가는 Seed 파이프라인으로 해서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축했던 것이다. 문제는 first-in-class 계열의 신규 타겟을 우리가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방법이 문제였다.


<신규 타겟 연구를 위한 기반>


결론적으로 모든 기반을 우리가 직접 갖출 수는 없었고 그럴 계획도 없었다. 회사 내부의 기반으로는 Medicinal Chemistry, Biological Assay를 중심으로 직접 구축했고, 나머지 기반은 과감하게 국내 대학, 연구소와의 협업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다행이 설립 초기부터 참여했던 자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공동연구계약으로 그들의 연구실 기반을 충분히 활용하고 우리가 관심있던 신규 타겟이나 신규 플랫폼 기술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고, 3년여가 지난 지금에는 조금씩 성과물이 나오면서 특허 출원도 준비하고 있다.


공동연구 기간을 계속 갱신해오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학교나 연구소와의 공동연구에서 실제로 쓸만한 성과물이 도출되는 사례가 거의 없고, 치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소요되는 기간에 비해 집중해서 수행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회사의 미래를 대비하고 블록버스터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고, 문제가 있다면 방법을 달리 하면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사귀기 2개년 계획의 기간 동안에 둘만의 저녁식사나 영화 관람 요청을 매번 매몰차게 차였을 때 공들이는 노력이 쓸모가 없다고 포기했더라면 결국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이쁜 딸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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