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가 있다.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노래다.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입시 공부하던 때에
꾸준히 듣던 노래 중 하나다.
오늘 밤, 열한 시 넘어 집을 나섰고
잠깐 동네 한 바퀴 돌던 중에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보도블록에서 나는
큰 몸짓으로 날았다.
시간이 분명 멈췄다.
튀어 나온 블록에 발이 걸려 순간
전신이 붕 떴는데, 나는 짧지만 날았다.
시간이 멈추고 몸은 공중에 떠 있으며
곧 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겠지.
한 손은 비었지만 오른손은 나와 앞으로 1,000일 이상
함께해야 하는 스마트폰이 있다.
공중에 뜨고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든 생각은 이거 심상치 않겠다 싶은 거였다.
예전에 도보 배달하다가 횡단보도에서
날아가서 넘어진 적이 있는데
이건 그거보다 훨씬 더 심한 부상을 입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 당시 도로에서 넘어진 후
피가 줄줄 흐르고 피멍이 곳곳에 들었지만
횡단보도 위에서 슬라이딩을 하듯 뻗으며 넘어져서
타박상은 있어도 다행히 뼈 자체에 문제가 있진 않았다.
이번은 멈춘 그 찰나 공중에 떠서
바닥에 손이나 팔이 닿는 순간 기본 골절은 보장되겠다는
직감이 스쳤다.
그렇게 붕 떠올랐는데
이건 도저히 다치지 않을 수가 없는 포즈였다.
???!!
1초도 지나지 않아 결론을 접했다.
하체가 순식간에 무게 중심을 잡으며
얼굴과 손바닥, 손목, 팔은 다행히 아스팔트와 충돌하지 않았다.
하체에 엄청난 부담이 쏠렸고 오른쪽 허벅지 뒤쪽에서
경련이 일어나려고 시동을 걸었지만,
본능적으로 망했다라고 느낀 부상은
아주 감사하게도 피했다.
운이 좋았다.
급박한 순간에 시간이 멈춘 듯
늘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다리를 두드리고 가볍게 털면서
- 너무 큰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봤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 마저 걸음을 옮겼다.
먼 예전의 기억과 연결 고리가 생겼다.
*
초등학생 때 방과 후 교실 수업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컴퓨터 수업을 듣고 신청자를 받아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에 응시했다.
(이 시험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시험일 수도 있다.)
애초에 수업 듣는 인원이 많지 않았다.
한 학년에서 한 반 인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의무로 하나 골라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닌
온전히 학생의 선택에 맡기는 거라
선생님께 그룹 과외를 받는 느낌으로 수업을 들었다.
- 과외 경험 없음 주의. 하지만, 느낌 아니까? -
의외였던 건 수업을 듣던 몇 십 명 친구들 중
정작 시험 신청을 하는 사람은 내 예상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시험까지 보며 자격증을 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 정도까지 하기에 부담스러웠던 건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응시료가 부담되는 수준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지금 적으며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할 뿐이다.
왜 열 명도 되지 않는 적은 학생만 자격증 시험을 치른 건지 오리무중이다.
*
아직도 생각난다.
컴퓨터 선생님이 인솔해 시험장까지 같이 가고
끝나고 학교까지 같이 들어왔던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시험 보러 나타나고
종료 후 가족과 사라지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선생님과 만나서 같이 가고
시험 끝나고 같이 동네로 돌아왔다.
시험은 주말이었는데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토요일일 확률은 낮겠구나.
초등학생 때는 주5일 논의 자체가 나오기 전이니까.
아침에 시험 보고
점심 때 학교로 돌아왔다.
- 왜 학교로 돌아왔는지를 모르겠다.
이 부분은 기억이 지워졌다. -
운동장에는 건장한 청장년이 모여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소리가 뻥! 뻥! 크게 들렸다.
*
여느 초등학교가 그러하듯
(그 당시에는 다 그랬다.
요즘은 아무나 정문 출입을 할 수 없으니 잘 모르겠다.)
학교에 커다란 동상이 있었다.
모교에는 정말 거대한 세종대왕 동상이 운동장 입구에 있었다.
황금빛을 한 세종대왕이 어좌에 앉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상이었다.
학교는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야 건물이 나타났다.
그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 두세 명과 이동하니
사람이 적어 같이 이동하는 분위기는 차분했다.
정문을 들어오니 분위기는 반전됐다.
축구를 하며 질주하며 뛰어다니는 어른들의 활력이 전해졌다.
넘치는 에너지로 서로 소리를 지르는데
차분한 분위기로 이동하다가 반전된 분위기를 마주하자
급속도로 피곤이 찾아왔다.
*
온라인에서 짧은 클립 영상을 봤는데
무척 기억에 남는다.
그 영상은 위에서 말한 고요한 학교의 침묵을 깨는
조기 축구회 동아리와 연결 고리가 있다.
‘놀렸다’는 단어가 핵심어다.
어느 유명 연예인의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단계에서 또박또박 말을 하기 어려워했다.
엄마가 한 글자씩, 두 글자씩 끊어서 천천히
따라하게 했고 아이는 약간 위태롭지만
잘 따라서 발음했다.
드디어 네 글자 ‘무당벌레’를 한 번에
말하는 때가 왔다.
쪼개서 말하는 것까진 잘 따라왔는데
‘무당벌레’ 네 글자를 한 번에 말하려니
그건 아직 무리였나 보다.
얼렁뚱땅 발음을 뭉개고 넘어갔다.
그 모습은 당연히 사랑스러웠고 귀여웠다.
그걸 지켜보던 부모는 웃음이 피식 터졌다.
아이는 쑥스러워 한다거나
오히려 화를 내는 반응을 하지 않고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 반응이 너무나 공감이 갔다.
어?! 나 이 감정 알아!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놀렸지. 나 놀렸어.”라고 말했다.
서러움이 차올라서 울음 소리는 점점 커졌다.
너무 서럽게 울면서
할머니에게로 가겠다며
급기야 아이는 자리를 떴다.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과 별개로,
아이의 정확하고 즉각적인 표현에 상당히 놀랐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잘 되지 않지만 해 보려고 따라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귀여워서 웃음이 터지는 부모 행동을 나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
“놀렸어. 나 놀렸어.”라는 말을 듣자
주말에 컴퓨터 시험을 보고 돌아온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
운동장이나 운동장 주변에서 공 맞은 적은 꾸준하다.
우선, 체육 시간에 절대 피할 수 없는
피구 경기만 봐도 날아오는 공에 맞고
상대에게 공을 던져 맞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공 맞는 거야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살면서 나는 나에게 그렇게 빠른 물체가 날아와,
나를 넘어뜨리고 나서야 그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운동장 바로 옆을 지나는 것도 아니고
운동장 입구에서도 몇 미터,
골대에서 10미터 정도는 떨어진 길을 오르던 중이었다.
빵!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공중을 가르는 축구공 하나가
빠른 속도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공은 너무 빨라 피할 새 없이 정통으로 맞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내 머리에 명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진심 목 빠진 줄. -
내가 어떤 물체에 부딪히기도 하고
나에게 어느 물체가 날아오기도 한 경험은 여럿 있으나,
아직까지 이때의 강렬함을 이기지 못한다.
공이 갑자기 내 앞에서 휘면서 머리를 확 쳤다.
사람 머리가 단어 그대로 깨질 수 있다는 걸
공이 내 머리를 강타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했다.
정수리에 가까운 머리 측면 위쪽을 맞았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공이 내 머리에 닿기 무섭게
“퍽!” 소리와 동시에 맥없이 푹 쓰러졌다.
아휴. 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넘어지는 모습이 얼마나 하찮았을지…
이후
여러 사람이 주변에 모이고
웅성이는 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아니, 늘어진 테이프를 튼 것처럼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바쁘게 말이 오가는 게 들렸다.
시야는 이상했다.
만화 속에서 어디에 부딪히면 별을 그린다.
눈앞에 별이 핑핑 돌았다.
유경험자 선배(들)가 분명하다.
내가 본 건 엄밀히 말해 별은 아니었지만
공에 맞기 전 내 시선이 있던 장면에
물결이 마구 일면서 초점이 흐트러졌다.
끝없이 물결이 일어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다.
은하수에 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운동장 바닥이 흔들리며 흘러내렸다.
소리는 웅얼웅얼 들리는데
귀를 막고 듣는 것처럼 두루뭉술했다.
주변에서 나만 물 속에서
눈을 뜨고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나만 진공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
*
그렇게 먼 거리에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온 게
믿기지 않았다.
이 생각을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맥없이 철퍼덕 쓰러진 상태로 했다.
충격이 너무 크니까
소리도 지르지 못하겠고
그저 주변에서 놀라 괜찮냐고 묻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같이 언덕을 걷던 일행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며 일으켜주려고 했다.
내가 기분이 상한 건
조기 축구회 사람들 반응이었다.
아저씨들 나 놀렸어…!!!
내가 봐도, 처음부터 공이 내 머리를 치는 게 목표인 것처럼 명중했다.
버틸 틈도 없이 서 있던 나는
바닥에서 하느작거렸다.
동호회 사람들은 공을 찾아가야 했고
내 상태를 점검하기도 해야 했다.
그들은 내 머리를 딱 맞춘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지 깔깔 요란하게 웃었다.
그렇게 강하게 공을 찬 아저씨가
헐레벌떡 달려와 축구공을 찾아가면서
미안하다고, 괜찮냐고 묻는데
그 말이 너무 가벼웠다. 깃털보다 가벼운 먼지인 줄.
일행 몇 명과 같이 다가왔는데 다들 킥킥 웃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귀가 막히고
머리 속에서 용수철이 여기저기 튕기고
메트로놈이 움직이듯 진동이 울리는데,
저 사람들은 확률이 희박한데다
초등학생 아이가 맥없이 바닥에 넘어진 게
웃기다고 희희낙락했다.
나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야는 핑핑 돌고
소리는 웅웅 물 속에서 듣는 것처럼 이상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놀라서 경직된 상태인데,
저 무리들은 내가 머리에 공 맞고
쓰러진 게 그렇게나 웃긴지
다들 박장대소를 하며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괜찮냐고, 물으며 사과를 하는데
가시적으로 보이는 건 없지만
큰 충격을 받으며 휙 쓰러진 사람 앞에 두고
무례하게 웃어서 불쾌할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내가 한동안 넋이 나가
제대로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그때도 세상은 돌고
홀로 물 속에서 소리를 듣는 것 같았기에
제대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 갑자기 확 쓰러져서 속도 메스꺼웠다.
살면서 내 머리가 그렇게 큰 물리적 충격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들이박은 건 제외. 이것도 이야기하자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머리를 세게 때리면
순식간에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는 장면을 본 적 있다.
그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거였다.
(다만, 극에서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든다거나 몸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하다.)
몸이 버틸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바로 바닥으로 넘어졌으니 말이다.
대체 내게 날아오던 공의 속도는 얼마였을까?
그 공은 메시가 찬 게 아니었을까?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일요일 아침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메시가 조기 축구회에 참석할 확률을 구하시오.
아, 내가 초등학생일 때면 메시도 어리니까 가능성 있다고 봄.
궁금해서 검색하니 1987년 생이다.
나보다 어린 줄 알았는데 잠시 놀랐네?)
공이 날아오는 걸 봤는데 기억이 편집된 것처럼
그 다음 장면은 내가 넘어져 있을 확률을 구하시오.
공 맞고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머리와 몸이 이상했다.
아니 며칠은 진공 속에 사는 것 같았다.
외상은 없지만
머리 속은 계속 웅웅거리고 시야가 흔들리고.
이게 뭔지 모르겠고 낯선 상태도 싫지만,
아까 그렇게 너무나 즐거워 하던 어른들이 떠올라 기분이 상했다.
축구하던 어른들 나빴다.
이때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았는지
운동장에 주말 조기 축구회가 있는 걸 보면
그냥 그 모습이 달갑지가 않다.
꼴보기 싫어… 얄미워…!
공 맞고 털썩 넘어졌는데 왜 폭소하냐고…
*
((( ???????????
엥?!
와! 잘 잤어. 단잠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아주 깊이 잠들었다.
오호라~ 통재라?
하지만 너무나 잘 자서 세상 개운한 걸?
행복하다.
어두웠는데 해가 떴고
지나가는 버스 소리가 들린다.
아니, 나 여섯 시에 투표소 가려고 했는데
계획 변경이구만. )))
*
넘어질지 아닐지 모르는
그 아주 짧은 스치는 순간,
내게만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재생되는 경험과 기억의 연결 고리가 생겼다.
아주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슬로우 모션으로
나만 아는 넘어지기 직전 전신이 긴장하는 찰나.
거기에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는데 현장은 별안간 웃음 바다가 되었고 나를 놀리는 상황에 즉시 내색은 못했던 기억.
- 아파서 넋이 나간 이유가 제일 크지만 -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날 수 있다고 믿으면’ 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잠시나마 날아 보니’ 인간은 어쩌면 날 수도 있겠다는
정반대로 접근하는 생각의 전환이 등장한다.
이건 마치 타조의 꿈인 것…
그리고 어린이 놀리지 마라.
다 알고 다 느끼고 그거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