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월 25일이네?!
음, 왜?! :)
나는 2022년도 어색한데 이게 무슨 일이지~
전혀 easy하지 않은 이 상황~
오늘은 거꾸로 해도 5월 25일이군.
가나다라떼(앞 세 글자는 메뉴를 숨기기 위한 가상의 이름임.)를 마시려고 아침 산책을 했다.
분명 나는 또박또박하게
“가나다라떼 텀블러에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내가 한참 모으면 먼지가 되는 활동 중 하나로
영수증 적립하는 게 있다.
그것 때문에 집착 수준까진 아니지만
(일부러 종이 출력해야 하는 걸 원치 않는다.)
결제 순간에 떠오르면 영수증 따로 달라고 요청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요청이 몇 년에 접어들면서
거의 반자동으로 영수증을 요청하고 있다.
코딩한 것처럼 어느새 그 대사가 나온다.
영수증 요청하는 그 말.
*
아무튼 가나다 라떼를 주문하고
영수증 따로 받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영수증을 받자마자 접으려는 찰나
뭔가 이상했다.
글자가 왜 여섯 글자니…?
가나다 라떼를 주문했으나
영수증에 가나다 에이드가 찍혀 있었다.
*
“어?!! 저 가나다 라떼를 주문했는데요~
에이드로 나와 있어요.”
결제 취소 후 재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QR결제는 취소가 안되는지 환불 처리가 안되고
오류 메시지가 끝없는 메아리처럼 울렸다.
가격이 같으면 상관없는데
100원 차이가 난다.
100원을 (내가)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시스템이 환불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직원은 난처한 듯 포스 화면을 이리저리 눌렀다.
결국,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직원이 조심스레 다른 제안을 했다.
“혹시…
차액 100원을 현금으로 돌려 드려도 될까요?”
나: 네! 괜찮아요!
그렇게 아주 낯선 순간을 맞았다.
거스름돈(현금)을 건네받는다?
그것도 100원 동전 딱 하나를 받는다?
그런데!
그 동전이 내가 학생일 때도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던
아주 오래 전 동전이다?!
*
기분이 이상했다.
갑자기 현실에서 비현실의 다른 세계로 이동한 기분이었다.
1979년에 제조된 동전이다.
동전 디자인을 모르는 청소년 친구들이…
존재할 것 같다만, 저 디자인은
내가 청소년일 때 이미 희귀했던 디자인이다.
1979년 동전을,
2022년에 거스름돈으로 받은 상황이 신기하네.
*
내가 지갑을 챙겼더라면
실물 카드로 환불을 쉽게 마치고
주문에 맞게 결제를 다시 했을 거다.
지갑 없이 카드사 앱으로 결제가 가능한 매장이라
굳이 지갑을 챙기지 않았다.
일부러 집에서 폰, 텀블러, 양산만 들고 나갔다.
- 지갑 들고 나가면…
걷다가 뜬금없는 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
오프라인에서 앱 결제가 되지 않으면
실물 카드를 내밀지만, 그건 흔치 않다.
동네에서 들르는 곳이 대부분
앱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40년도 더 지난
1979년에 발행된 주화여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동전이라는 존재 자체가 낯설었다.
와, 동전을 얼마만에 만지는 거야!?
*
큰 수익은 나기 어렵지만
- 운에 달린 일임. -
확실한 수익은 보장하는 노동이 있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창조 경제였던,
놀이터에서 동전 줍기(찾기)였다.
놀이터에 흙과 모래가 섞여
건조하게 변한 늪지대를 걷는 것 같았다.
- 늪에 빠진 적 없음 주의. -
놀이터는 개인 일정 또는
극심한 기상 악화 상황이 아닌 이상
학교보다 더 자주 가던 때가 있다.
일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놀이터에는 꼭 나왔으므로.
방학에 학교는 두 달 안팎 쭉 나가지 않았어도
놀이터는 방학 때 더 열심히 찾았으니까.
요즘 놀이터는 아담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누비던 놀이터는 넓었다.
물론 학교 운동장만큼 질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네와 미끄럼틀부터 시소,
뺑뺑이, 구름 사다리 등
여러 놀이 기구가 한 곳에 여유롭게 간격을 두고 있었다.
그러니 흙과 모래가 깔린 구역도 당연 넓었다.
우린 놀이 기구를 돌아가며 다 이용했다.
한 가지 특징은, 일정 이상의 친구들이 모이면
대체로 뺑뺑이 위주로 놀았다는 거다.
두 팀으로 나눠 한 쪽은 돌리고
한 쪽은 그 안에서 버티며
더 많은 사람이 남은 팀이 이기는 걸로.
아니면 다 같이 몇 바퀴 빠르게 뛰고
관성의 법칙으로 계속 도는
뺑뺑이에서 튕기지 않고 끝까지 남는 사람이
이기는 개인전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아주 에너지를 분출하며 쏟아내며
땀 뻘뻘 흘리고 놀았다.
그 결과,
놀이터 바닥은
(놀이터를 만든 분들은 예상 못했을 것 같은)
바다의 보물 창고라는 갯벌처럼
초등학생의 보물 창고가 된다.
흙 판다는 건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표현 그대로 실제 있던 일을 말한다.
놀이터 모래를 파면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사실 불로소득이라 부르기 난해한 게,
흙을 파는 게 보통 중노동이 아니다.
다칠 위험이 있는데다
그 시도가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10원, 50원은 일부러 놀이터 바닥을 파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올 때가 많았다.
이건 동전 여러 개가 모여야
실제 슈퍼나 문방구에서 가치를 발휘하므로
발견하고도 줍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지폐를 줍는 건 주변의 축하를 한몸에 받는
상당히 희귀한 일이었고,
100원이면 횡재하는 거고
500원이면 ‘대박’이었다.
놀다가 슬쩍 동전 일부가 보이면
‘구출’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아예 놀이터 바닥 파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암묵적 규칙이 하나 있었다.
서로 팔 닿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흙을 파지 않는 거였다.
우정에 금이 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그러한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는
교과서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관계의 지혜였다.
수확이 좋은 날이면
친구와 함께 슈퍼에 가서 먹을 걸 사서 나눠 먹었다.
이를 테면, 동전 초콜릿, 신호등 사탕, 풍선껌 같은 불량 식품.
(동전 초콜릿 포장 뜯었는데 당첨되면
초콜릿 또 받고 완전 이득!
이게 바로 오늘날 돈이 돈을 낳는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 당시에 깨닫지 못했을 뿐.)
*
요즘은 놀이터 바닥부터 학교 운동장까지
우레탄 바닥으로 바뀐 지 한참이다.
이 말인즉슨,
라떼처럼 놀이터에서 바닥 파헤치며
자산의 증대를 꿈꾼다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는다는 뜻이다.
손끝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정형외과 행이다.
고통은 어쩔 것이며,
치료비가 더 나와.
*
1979년.
나는 사람 나이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 나이도 마찬가지다.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몰라서 그 즉시 계산하고 나서야 대답할 수 있다.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까닭은
몇 살이니까 뭘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있거나 일부러 암기한 게 아님에도
1979년을 마주하면 한 인물이 떠오른다.
연예인 이효리 님이다.
거꾸로 해도 이효리.
(말을 놓으려는 것 아님.
박자가 실린 대명사 같은 문구임.)
일면식 없고, 연결 고리 없는데
이 분은 평생 효리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혹시 연락이 닿는다면
오늘 받은 1979년 동전 100원을 드리고 싶다.
(100억이랑 바꾸실래요?
일단 만날 일 없으니 되도 않는 말 던지는 거지.)
오늘은 그렇게
좌우 대칭, 데칼코마니,
거꾸로 해도, 525!
(와? 나 어떡하냐… 왜 이러지.
기억력 감퇴와 함께 나타나는 코로나 후유증인가?
525! 적고 ‘오백 이십 오 팩토리얼.’ 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