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는 손이 참 많이 간다.
비밀번호는 분명 내 정보다.
내가 직접 만든다.
비밀번호는 보안 문제 때문에
(날이 갈수록)
까다로운 조건으로 생성하라고 요구한다.
이제 나도 내 정보를 찾느라 버벅대는 일이 흔하다.
초등학생 때 처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 때
영어로만 만들면 됐다.
글자 수 말고는 별다른 조건이 없었다.
영어만 쓰면 해킹되기 쉬우므로
어느 순간부터 비밀번호에 숫자도 포함하라는
조건이 붙는다.
영어와 숫자의 조합이 만나면
이전 영어만 쓰던 때보다
(수치 상으로)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시기가 꽤 오래 지속됐다.
그러다 은근슬쩍 간 보는 듯한 조건이 등장한다.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고
바꿔야 하는 입장에서는 성가신 정도다.
이를 테면,
1. 10자 이상 길게 만들기
2. 대문자 섞기
3. 소수의 특수문자 넣기
4. 생일(주민등록 앞자리) 금지
같은 게 있다.
내가 만난 사이트 중 비밀번호 검토에
가장 요구 사랑이 많은 곳은
공항 보안 검사보다 깐깐했다.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숫자, 특수문자를
모두 다 쓰라고 했다.
하, 그래. 가입해야 하니까 하라는 대로 하마.
네 가지를 섞어 입력했다.
만드는 것도 일이다.
비밀번호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된다고 거절 당했다.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었는데
왜 그러냐!
같은 종류의 문자가 ‘세 개 이상’ 연이어
쓰이면 안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입력해야 통과된다.
To09da@!y^is
거기에 비밀번호는 12자리 이상…
아니, 이 정도면! 매번 타자기 아무렇게 신명나도록
두들기지 내가 만드는 비밀번호가 의미가 있는 거니?
누구를 위한 비밀번호인가.
내 정보에 나도 접근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인가.
아우, 아득하다.
지금은 어느 사이트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몇 년 전이면 채용 사이트였을 확률이 높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미 탈퇴 처리가 됐겠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비밀번호는 우주를 떠돌겠군.
대문자, 소문자, 숫자, 특수문자
나올 수 있는 건 조건으로 다 나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서 보안을 강화하는가?
특수문자에 집중한다.
몇 개 없던 특수문자 종류가
요즘은 자판에 있는 온갖 게 다 되는 걸로 안다.
이러다 훗날 비밀번호 조합에
이모지까지 추가될지 모른다.
(진지하다.)
가까운 미래 세대는 비밀번호에
장문의 편지를 써야할지 몰라.
*
숫자 ‘486’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숫자 가운데에 가로로 줄을 죽 그어
‘사랑해’가 된다는 걸 알면
최소 동년배다.
그러면 아마 이 노래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제목에 이 숫자가 들어간 노래,
‘비밀번호 486’이다.
상쾌하고 신나는 노래라 당시에
꽤 인기를 끌었다.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은 가사도
인기에 한몫했다.
나도 그 노래를 한동안 흥얼거리며 지냈다.
지금은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노래 가사 무슨 일……)
당시에는 좋은 노래로 유명했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 지금도 좋은 노래..다...
마지막으로 노래 들은 게 몇 년 전인데,
후렴구는 중독성이 강해
이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
스마트폰으로 로그인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문자를 입력하는 방식을 벗어나
페이스 ID, 지문 인식, 고유 패턴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 방식이 쓰인다.
이렇게 되면, 타이핑을 통해 로그인하는 경우가
드문 일이 된다.
사이트 한두 곳 가입한 것도 아닌데,
슬슬 비밀번호 때문에 ‘로그인’이라는 것 자체에
싫증이 나고 있다.
사이트마다 조건을 충족해 비밀번호를 만드면서
나는 현재
몇 가지의 비밀번호를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내가 뭘 더 할 수 았겠니…!
내 비밀번호 나도 몰라.
내 비밀번호는 맞는데.
수고롭게 문자 인증 매번 거치고
변경하라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 여기까지 입력하다 잠의 세계로 빠졌다…
알 수 없는 자음과 모음의 일탈이 펼쳐져 있군.
비밀번호 말하는데 비밀번호 같은
자모음 나열 파티가 열리고 있구나.
현재 시각 04:55 :) 와우!
뜻밖의 전개인데 만족스럽다.
깊이 엄청 잘 잤어, 와우! *****
이제 웬만큼
- 비번 돌려 막는 건 이제 무리수 -
내가 기억할 법한 조합은 진즉 거덜났다.
따로 저장하지 않고 사이트 별 비밀번호를 알기란…
음, 아마 나보다 내 비밀번호를
해커가 더 많이 알 수 있다.
(단순히 알아내도 영양가 없으니
구태여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주 로그인하는 사이트 외에
드물게 방문하는 곳에서
단번에 로그인에 성공하면!
쾌재를 부른다.
요즘은 잠깐의 로딩 뒤
로그인 성공을 확인하면
놀라곤 한다.
‘오, 이거 맞아!!!!????’
눈이 커다래져서 화면을 응시한다.
내 비밀번호 내가 정했다.
몇 년 전에는 아이디가 두세 가지로 나뉘어
헷갈렸으나,
이제
아이디와 비밀번호 모두
수수께끼다.
이 쯤 되면
해킹은 내가 이미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스스로 모르지만 사실 해커였던 거야...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내 해킹 자아 깨어난 거야…!
내가 그 ‘본인’인데 해킹을 한다는 개념이
어느 정도 말은 된다. 참나!
나도 모르는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었던 거지.
- 자다 깨자마자 마저 적느라 고생이 많다.
아무 말 대잔치 열림. -
수줍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한 번에, 바로,
로그인이 되면
찰나의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다.
‘내가 해 냈어! 해 냈다고!!!’
당사자도 관리하기 어려운 비밀번호 조합과
출금일처럼 빠르게 찾아오는 변경 주기.
누구를 위한 비밀번호 변경인가.
내 속엔 나도 많지만
비밀번호 목록도 많다.
이러다 소규모 전시회 개최도 가능할 듯.
가수 윤하의 노래
‘비밀번호 486’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재해석이 필요한 곡이다.
한 시간마다 보고 싶다고
감정 없이 말하지 말아
흔하게 널린 연애 지식은 통하지 않아
백번을 넘게 사랑한다고
감동 없이 말하지 말아
잘 잡혀가던 분위기마저 깨 버리잖아
여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조금씩은 달라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 줘
날 열어 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아무 데서나 나타나지 마
항상 놀라지만은 않아
화장기 없는 얼굴 보이면 화도 나는 걸
남자는 여자만큼 섬세하질 않아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다 된다고 믿어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 줘
날 열어 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어렵다고 포기하진 말아 줘
너 하나만 원하는 날 알아 줘
바람둥이 같은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늘 속고 마는 걸
날 애태우고 달랠 줄 아는 니가 되길 바래( > ‘바라’가 옳다. 노래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 맞춤법 오류…)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 줘
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
누구도 알 수 없게 너만이 나를 가질 수 있도록
You’re my secret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Boy
비밀번호 486 - 윤하
아…
……
‘(윤)하…’하고 한숨이 잠시.
으악…
밀려온다, 공감성 수치.
가사 무슨 일이야, 총체적 난국…
썸바디 헬프 미!
누가 내 오그라든 손발을 펴 줘요!
나를 살려 줍쇼…
시크릿 보이는 또 뭐여.
(말하지 말고 계속 시크릿해라.
그들만의 사랑 그들끼리만!)
비밀번호로도 골치 아픈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시크릿 보이는 누구야?
알고 싶지 않다.
시크릿 쥬쥬(어린이 화장품 가방, 드레스)를 잇는
노답이네.
전반적으로 시크릿이 문제가 많네.
(아, 다른 말인데 노담 광고 제발 그만…
금연 공익 광고가 아니라 흡연 권유 같음.
공익 광고에서 나는 수많은 ‘공’ 중 한 명인데
이 광고는 스핑크스가 내는 퀴즈 같아.)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사가
곳곳에 있어.
솔직히 전반적으로 가사는 뜨악.
멜로디와 가창력은 훌륭하다는 데에서
느끼는 당혹감!
아무튼 이건 오늘날
비밀번호를 두고 벌어지는 일을,
비밀번호를 두고 느끼는 감정을
한참 전에 예견한 노래다.
곡 제목에서 (축약한) 그 정보를 알 수 있다.
‘시크릿 보이’는 그들끼리만
제발 꼭 좀 계속 시크릿하면 좋겠는,
유치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노래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본뜻은 따로 있다.
비밀번호 486,
(일단 비밀번호 틀린 거
누적 486회 넘음. 확실히 넘음.)
비밀번호를
하루에
네 번 고민하고 4
여덟 번 찾고 8
여섯 번 인증 (번호) 받는 6
현대인의 삶을 그렸다.
인증 번호…
나를 숫자에 가두지 말라…
내 신원을 숫자로 압축하려 하지 마.
아무 말 축제가 열렸구나.
‘로그인’을 피할 수 없지만
로그인 난이도는 나날이 높아지는
현대인의 깊은 고뇌를
곡 제목에 ‘시크릿하게’ 담은 곡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번호 속
그 누구에 ‘나’도 들어가는 중인 게 함정.
그거 아는가?
비밀번호 486에 있는 숫자
다 더하면
십팔임.
(역시 이 노래는 사랑 노래가 아니었던 거다.)
비밀번호, 너를 어쩌면 좋아.
나도 모르는 게 많아지는 ‘내 비밀번호’
내 것이 내 것 같지 않다.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