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 김부장!
장안의 화제, 드라마 김부장이 종영되었다.
명장면도 많았고, 명대사도 많았다.
수고했다, 김부장. 이라며, 남편을 위로하는 명세빈 배우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자신의 자존심을 끝까지 놓지 못하던 김부장과 김부장의 대화도 인상깊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선물 하나 못했어."
대기업 옷 벗고,
차 팔고,
결국 인생의 트로피같던 서울 자가를 팔고 떠나는 장면도 인상깊다.
집은, 트로피이기도 하지만, 추억이기도 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내 인생의 장면 중 하나가 있다.
내 신혼집.
나는 20평도 안되는 코딱지만한 작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좁은 집을 하나하나 꾸며가는 신혼의 재미와 행복이 너무 좋았다.
우리 부부의 선택으로 해외이주를 한 후, 코로나로 강제귀국했을 때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 집에서 첫 딸을 얻었다.
새나. 내 딸.
내 인생의 전부. 내 트로피.
내 삶은 정말 형편없었고 보잘것 없었지만, 내 딸과의 모든 순간은 보석처럼 빛났다.
정말 아름다운 매 순간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집의 풍경, 집으로 들어오는 햇살, 비오는 날 좁은 베란다에서 옹알이하는 딸을 안고 비를 구경하던 순간. 그 모든 것이 기억난다.
집은, 그런 것이다.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내 추억과 사랑이 살아숨쉬던 곳.
그래서 집을 떠난다는 것은 추억의 흔적과의 결별이다.
서울 자가를 떠나며 살던 아파트를 바라보던 김부장의 표정에 격한 공감을 하였다.
김부장과 김부장이 조우하여,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를 위로하던 장면에서 참 많이 울었다.
부모님, 자녀, 집, 아내, 내 등 위에 올라탄 모든 존재들이 무겁다고 하던 김부장.
맞다. 무겁고 버겁다.
내 나이 40대 중반. 부모님은 두분 다 50년대생.
전화도 자주 안하고, 내겐 너무 서먹한 두분이다. 하지만 부모님 만난 후 그 어느때보다 가장 신경이 많이 두분께 가는 요즘이다. 많이 늙으셨다. 걱정스러울만큼. 귀도 잘 안들리셔서, 그 호랑이같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 가족.
나는 두 자녀가 있다. 5살 딸과, 올해 4월 태어난 핏덩이. 그리고 아내.
너무 어리다. 뭐 정답이랄게 있겠냐마는, 남들 30대 중반에 경험할 일을 나는 40대 중반에 하고 있다.
나는 결혼도 늦었고 출산도 늦었다.
게다가 나는 외벌이.
심지어 직장은 중소기업이다.
나는 팀장도 아니고, 그냥 팀원인 사원이다.
앞이 안보이고, 까마득하다.
김부장이 말한대로, 무겁고 버겁다.
넋두리 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닌데, 그렇게 흘러가서 좀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일 하루를 살아가는, 살 수 있는 이유는,
정말 아주 작은 것이다.
가족.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오늘도 퇴근길에 내 딸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 주차할 때 전화해~ 내가 나갈게 알았지?"
나는 매일 이 순간을 기다린다. 내 딸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아빠의 살아가는 이유일게다.
날도 추운데, 나는 주차 후 집에 전화를 건다.
그러면 내 딸이 뛰어나온다. 춤을 추면서. 1층으로.
그러면 나는 그녀를 안고 2층 우리 집으로 올라간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그리고 우리 딸 너무 예뻐 축복하면서.
그렇게 고된 하루를 치유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간다.
오늘처럼, 내일도 고될 것이다.
난 오늘도 한순간도 쉬지 못한 채 계속 일했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사무직으로 채용됐는데 왜 자꾸 몸을 쓰는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중소기업은 정말 의문 투성이다.
어느 회사나 다 똑같겠지만, 정말 의문 투성이다.
그럼에도 버텨낸다.
내 위에 올라탄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내 위에서 나를 안아주고 있는 그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