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도 소녀 5명과 왁자지껄 바라나시 모험하기

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과거는 지나간 역사이고,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현재는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순간을 살며 항상 웃어야 한다.
- 인도 소녀가 내 노트에 남긴 문장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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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불타는 장작 속에 들어가면 구분할 수 없는 한 줌 재가 될 뿐이다. 내가 입고 있던 옷도, 지위도, 직업도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재로 돌아간다.


삶. 우리는 애쓰며 살아간다. 사랑, 명예, 부, 쾌락, 지식, 사상.

발버둥 치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눈앞에 굳어버린 시체를, 전부 불타 남은 두개골을 보면서도 내게도 찾아올 필연임을 믿지 못했다. 이 강에 몸을 씻으면 죄가 사라진다는 미신을 쫓아 이곳에 다다른 수 만 명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제 일이 아닌 양 불타는 시체밭을 구경하며 떠들고 이내 카메라에 담는다.

힌두교 최대 성지 바라나시 그리고 그 도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 강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이어 모순을 드러내고, 그로써 진실을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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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 수 만 명. 이들은 강변에서 몸을 씻고, 배에 타고 강가를 가득 채우며 생명을 뿜어낸다. 아이를 데려와 강물에 담그는 부모, 종교의식이 끝난 후 불꽃으로 달려가 그 기운을 온몸에 묻히는 노파. 관광객 사이를 누비며 열심히 물건을 파는 아이들. 거리에 소, 원숭이, 개까지.

그 강 끝에 화장터가 있다. 진귀한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그들을 뚫고 계단을 올라가면 화장터가 나온다.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매워 제대로 뜨기 어렵다. 날리는 재와 연기에 숨을 쉬면 폐가 쓰려온다.

다른 화장터가 전부 내려다 보이는 단에서 몇몇 시체가 불타고 있다. 이곳은 상위 카스트들을 위한 화장터이다. 하위 카스트들과 재가 섞이는 걸 피해 만들어 놓은 단이 우스웠다. 재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현세에 계급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하위 카스트들끼리도 층이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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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와 강가까지 걸었다. 시체를 들고 갠지스 강에 담가 씻는 들과 그들 사이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모순적이었다. 시체 주위를 들개들이 어슬렁 거렸다. 재만 남는 화장터에 뭐가 있다고 싶었는데, 한 개가 물어뜯고 있는 잘 익은 고기 덩어리를 보며 꺠달았다. 동물에게는 악의가 없다. 그저 자연일 뿐이다. 이 공간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에 인간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던 자연은 개의치 않는다. 불은 모든 걸 태워 재로 만들고, 강은 하루 수 백구 시체를 뿌려도 흘려보낸다. 개는 배를 채우고 생명을 유지한다.

삶과 죽음이 이어저 함께 흐르는 이 강에서 나고 자란 소녀들이 있다. 이틀간 반나절을 함께한 소녀들이다. 소녀들은 즐겁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같이 활달하고 발랄하다. 별 것 아닌 내 농담에도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길거리에서 시선은 개이치 않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힌두 사원에서도 같은 행동을 하다 호통을 듣고 신나게 도망치는 친구들이다. 이들과 함께 고향을 누비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등학생인 이들을 통해서 인도에서 가졌던 여러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자매들은 힌두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종교는 없다. 하지만 비건으로 우유까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을 실천한다. 그 이유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다. 동물은 악의가 없는 자연 자체이며, 힌두교에서 모든 신은 그들이 빙의하는 동물을 지닌다. 그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동물에 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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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즐겁고 자유롭게 행동하며,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비혼을 약속했다는 자매들. 여자가 술을 마시면 집안이 뒤집어지고, 연애와 연애결혼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 나라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녀들이 내 노트에 적어준 두 문장. 현재를 즐기며, 남들 시선 아래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어쩌면 삶과 죽음이 이어진 모순적 공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기에 자연스레 가지게 된 생각이 아니었을까. 매일 수 백구 시신이 불타는 마을에서는 자연스레 모든 게 허상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감싸는 남들의 시선도, 직업, 부, 옷, 외모 결국 재가 되어버리는 모든 것들이.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단지 강에 몸을 담갔다가 빼고, 기념 의식에 돈을 바치면 죄가 씻긴다고 생각하는 우매함을 마주하며.

흔히 파괴 신이라고 알려진 힌두교의 시바 신. 오늘 시바신의 파괴는 외부의 적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바 신은 내면의 적을 파괴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비교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자책하는 마음, 제한하는 마음. 시바신이 만들었다는 도시 바라나시 그리고 그 도시를 가르는 갠지스 강. 갠지스 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강에 몸을 씻고 돈을 내라 따위가 아니라, 모두가 한 줌 재가 되어버리는 공평한 삶에서 남을 가치를 찾으라는 것일지 모른다. 결국은 사랑과 중용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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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시에 가트에 나가 일출을 보았다. 한 시간 넘게 해가 차오르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묵상했다. 저 멀리 백사장 넘어 수평선에서 해가 머리를 드러내고 중천에 다다라 강가에 윤슬을 만들 때까지. 사람이 몇 만 명이 몰려오던 아랑곳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 그 강변을 오래도록 지켜왔을 건물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늦잠을 잔 자매들을 만났고, 끊임없이 재잘대는 그녀들과 40분 거리 아시 가트까지 걸어갔다. 다시 툭툭를 타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학인 바라나스 힌두 대학 캠퍼스를 탐험하고, 처음 만난 가트로 돌아와 작별했다. 혼자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와 편집을 하다 다시 나가 점저를 먹고 화장터까지 걸어가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글을 남긴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다녀왔다 편집을 하고 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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