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어떡할까요 여러분..

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날 것 세상에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돈된 언어로 담습니다. 팔로우 하시고 세계여행 함께 해보아요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의대생이었다. 그저 얽매이는 게 싫을 뿐인 청년은 바이크를 타고 떠난 남미 여행에서 혁명가로 변모한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그는 권력을 거부하고 혁명을 이어가다 볼리비아 정글에서 cia에 제거당한다.


여행은 누군가에게 인생을 송두리 채 바꾸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 남미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체게바라는 총 대신 청진기를 들고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은 내가 갇혀 있던 작은 세상을 부순다. 내가 진리라고 믿던 것들이 덧없음을 밝혀낸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진리를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인도와 방글라데시 두 저개발 국가를 여행하며 세상이 부조리 함을 느꼈다. 물론 한국에서도 부조리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낀 부조리함은 한 차원 위에서의 부조리함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빠져있다. 이들이 놓은 환경은 19세기 사람이 21세기로 넘어오는 것만큼 불가항력적이다. 같은 시간대에 공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이 불합리함이 나를 문득 조여왔다.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만난 똑똑한 청년들과 깊이 대화하며 의문은 더 커졌다. 이들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



방글라데시 서울대 다카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동갑내기 라깁. 그와 대화하며 엄청 놀랐다. 1970년대 한국 정도 발전 수준을 가진 방글라데시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방글라데시는 무슬림 국가이다. 그는 무슬림이면서 종교와 민족,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대학가에서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있었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표현한 그 마르크스 교재가 버젓이 서점에 놓여있었다. 2024년 독재 정권을 몰아낸 시위에 앞장서다 가슴에 총을 맞은 라깁. 그가 가슴에 총을 두 번 더 맞고 살아난다고 해도 그는 지금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 청춘을 보낼 수 없다. 그는 20대 내내 물이 안 나오는 호텔에서 밤새 일하며 살아야 한다. 안젠가 방글라데시 거물 정치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만난 사라는 갓 20살이 된 고등학생이다.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바라나시에서 자라서일까. 그녀가 가진 성숙한 생각에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갠지스 강에 몰려드는 수 십만 관광객들도 언젠가 강 한편에서 타고 있는 시체들과 같이 재가 된다. 빈자든 부자든 불에 타고나면 구분할 수 없는 같은 모습이 된다. 결국 우리가 어떤 옷을 걸치고 얼마를 가졌는지는 긴 시간선에서 무의미하다. 모두 재가 될 뿐이니까. 힌두교 성지에서 태어난 소녀는 갠지스 강에 죄를 씻으러 온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전혀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강에 몸을 씻는다고 도둑이 사람이 되냐며. 그녀가 내 노트에 적어준 두 문장이다. 오직 현재를 온전히 행복하게 살 것, 남들에 시선 아래 스스로를 가두지 말 것. 이 진리와도 같은 두 문장을 뱉는 소녀는 이 거친 인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거리에는 소똥이 가득하고, 매연으로 폐가 쓰리며, 여자 혼자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는 나라에.


물론 이 두 청년은 주어진 삶과 환경을 사랑한다. 그런 그들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단지 서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왕처럼 군림하는 여행객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바라나시에는 히피처럼 입고 하루 종일 여유롭게 생활하는 수 십 명에 서양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푼돈을 받으며 매연과 더위를 뚫고 하루 종일 일하는 툭툭 기사, 매일 요리하는 가게 점원들,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 뭐라도 팔기 위해 영어로 말은 거는 상인들 까지. 그 누구도 이들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유하게 그들을 부려먹는다. 도대체 왜? 이유는 하나다. 이들은 서양 국가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인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인생에 굴곡을 체험하러 온 서양 청년들 인도에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삶에는 발끝하나 대지 않으며 사파리 투어를 하는 그들과 인도 사람들이 사는 삶이 나뉘는 것이다.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6년 간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빛나는 눈으로 세계여행이 꿈이라고 말했던 인도 소녀가 꿈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쉬운 난이도이다. 여권 파워도, 화폐 가치도 훨씬 유리하다. 한국에서는 인도에 2배 속도로 돈을 벌 수 있다. 호주에서는 인도에 4배 속도로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은 일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 최근 들어 정부는 각종 지원금을 뿌린다. 나라에서는 공짜 돈을 온갖 이유를 들어 분류하고 앞에 청년을 붙인다. 청년 자산형성 지원금, 청년 취업 지원금, 청년 창업 지원금. 나도 그 수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인도에서 태어난 수많은 툭툭 기사가 2달을 치열하게 살아 받는 월급을 한국에서 태어난 청년이라는 이유로 받는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같은 인적 수준을 가진 사람도 국적에 따라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


사실 출생에 따른 불합리함은 인류사를 통틀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기원 후 한국에서 신분제가 없어진 건 현대 100년뿐이다. 빈곤이 없어진 시대는 그보다 더 적다. 빈곤은 없어진 게 아니라 옮겨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멀리. 부산 의류공장에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밤새 일하는 여공들로.


이런 생각에 잠겨 갠지스 강가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한 꼬마가 팔찌를 팔러 와서 말을 건다.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툭툭 건드리며 나를 귀찮게 한다. 팔찌는 잘 모르겠고 그냥 잔돈을 주고 보냈다. 지갑에 있는 돈을 다 꺼내서 쥐어주는 상상을 하다 금방 접었다. 그래도 이 아이는 갠지스 강가에 팔찌를 들고 나올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13. 인도 소녀 5명과 왁자지껄 바라나시 모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