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한두 시간씩 늦어지다 이내 5시간이 연착되었다. 옆 자리에 누워있던 인도 형님이 내게 물었다. 한국은 기차가 훨씬 좋지? 그런가? 한때 코레일 vip회원이었던 기억을 되짚었다. “응 그렇네 이 정도 거리면 12시간이면 가겠다. 연착은 절대 안 될 거야. 아 근데 끝에서 끝까지 3시간이면 가서 이런 침대 기차는 필요 없어” 형님이 대답했다. “야 그럼 정말 좋겠다” 정말 좋은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대답했다. “난 인도 기차가 더 좋아”
살면서 가장 긴 시간 기차에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바라나시에서 뭄바이 까지 1600km 35시간짜리 이동이었다. 이 이동은 생각 외로 여행에 일부처럼 녹아들었다. 즉, 이동이 아니라 여정이었다. 무엇이 이동을 여정으로 만드는가?
첫 번째는 속도이다. 내가 음미할 수 있는 속도로 풍경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ktx는 풍경을 담기에 너무 빠르다. 지하철은 풍경이 없다. 평균 속도 50km로 달리는 이 기차에서는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다가 산지로 들어가기도 하며, 전부 도시인 목적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골 마을 풍경도 담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마음이다. 조급함이 사라져야 한다. 군 휴가 때 포항에서 서울로 가는 ktx에서는 빨리 도착하기 만을 빌었다. 고속버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빈다고 달라질 리 없는데도 괜히 빌었다. 하지만 이 30시간짜리 열차와 인도에 악명 높은 열차 지연은 나를 타기 전부터 체념하게 했다. 목적지에서도 여행을 하게 될 테니 전혀 급하지 않았다. 적당한 덜컹거림을 즐기며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상황이다. 분주하게 다른 장소로 이동해 새로운 장면을 만나는 여행 중에 온전히 정지해 있던 30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내게 여유와 정신적 휴식을 주었고, 지난 여행을 회고하고 앞으로 여행을 상상하게 했다. 30시간 동안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긴 여행 중 단비 같이 느껴졌다.
이동까지 여행이 되는 여정을 사랑한다. 내가 바이크 여행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차 여행과 다른 결이지만 이동하는 과정이 즐거워지지 않는가. 분주하게 관광 스폿을 빠른 속도로 정복하는 게 여행이 아니다. 때로는 느림의 미학을 즐겨야 함을 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