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뭄바이에서 찾은 여행의 의미

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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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에서 산 인도 전통 스카프를 여행 내내 두르고 다녔다. 서울에서는 시선이 신경 쓰여 못할 액세서리였다. 뭄바이에 도착하고 3일이 지났다. 오늘도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하지만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인다.

뭄바이는 내가 아는 도시였다. 행정력이 고루 미쳐 도시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공간. 고양이와 비둘기를 제외한 동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거리. 고층 건물이 야경을 만들고, 복잡한 전선들은 모두 포장된 도로 아래로 숨긴 서울과 닮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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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도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이다. 뭄바이에 천만 명 시민과 나머지 10억 명이 사는 세상이 이렇게 까지 달라도 되나 싶었다. 내 마음속 작은 마르크스가 근질근질거렸다.


지나온 인도 도시들에서 만들어진 모든 이미지가 깨졌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낡고 촘촘한 건물, 정신없이 얽혀있는 전선 뭉치, 그 아래 흙길을 가득 매운 툭툭과 사람들이다.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를 직접 여행하며 편견은 더 강해졌다.


하지만 뭄바이에는 복잡한 전선을 찾기 어려웠다. 도로도 대부분 포장되어 있으며 신호까지 존재한다. 낡고 촘촘한 건물 대신 식민지 시절에 지어졌을 법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심지에서는 고층 빌딩이 만들어 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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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사람들 표준화한다. 한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을 매긴 식당과 카페가 즐비했다. 기성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타벅스와 감성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업무에 열중하는 사람들. 호스텔에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를 받고 주식 호가창을 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굳어 있었다.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내가 말을 걸면 감정이 생겼지만 그전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지나온 인도 도시들에서 화려한 전통복을 입고 다양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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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도시화될수록 인간 외 존재에게 허락된 공간은 줄어든다. 뭄바이에서는 길거리에 발에 치이던 들개, 원숭이, 소를 보기 어려웠다. 그 자리를 길 고양이와 비둘기가 채우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야생 동물은 고양이뿐이다. 어느 나라던 도시화가 진행되면 다른 생물과 공존하기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이 도시에서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익숙한 이방인일 뿐이다. 어딜 가나 신기한 눈빛과 사진 요청을 받았었다. 20번쯤 넘어갔을 때부터 귀찮아서 종종 거절했었는데, 이곳에서 그런 시선과 요청 모두 드문 일이 되었다.


치안이 확실히 개선되었다. 12시까지 여성들도 카페에서 대화를 하고 걸어서 귀가하는 지역이 있다. 택시 기사들도 호객을 하거나 과한 흥정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부 미터기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이지만 전혀 다른 도시를 여행하며 중요한 건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사람들이 무식하고 못됐고 한국 사람들이 똑똑하고 선한 게 아니다. 인간 본성은 그대로이다. 다만 한국이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게 cctv가 많은 나라일 뿐이다. 행정력이 고루 미칠 수 있는 규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기댓값 보다 기대손실이 큰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기와 소매치기를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인도든 한국이든 신호등이 생기면 사람들이 신호를 지키며,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면 도로 질서가 갖춰진다.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생기면 거리가 청결해지며, 중산층이 생기면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게 된다. 어느 나라던 도시는 인간 외 생물에게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표준화시키며 표정을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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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던 어이없는 당부가 떠올랐다. 새 신발을 사주면 나가서 삥을 뜯기거나 도둑맞지 말라고 하고, 소매치기와 사기에 대한 주의를 주셨었다.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여행하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청춘을 보낸 공간은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인도를 여행하는 나처럼 소매치기와 사기를 조심해야 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문명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다." 뭄바이 박물관 입구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있다. 인류는 5천 년 전에 개발한 그릇과 100프로 일치하는 형태의 그릇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이해할 때 비로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현대 세계는 국가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 세계를 여행하면 한국에서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시간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산업화를 마치고 치열한 민주화 과정에 놓인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 1970년대를 마주한다. 인도에서 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찾는다.


결국 한국에서는 가볼 수 없게 된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른 공간에서 발견하는 과정이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위를 직접 밟아보며, 비로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게 될 공간과 시간을 이전보다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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