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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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나라 사우디를 여행했다. 사실 전쟁 영향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여행할 제다와 폭탄이 떨어지는 리야드는 1천 킬로 떨어져 있다. 제다는 수에즈 운하가 있는 홍해 연안에 리야드는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도시이다. 심지어 제다는 그리 전략적 가치가 없다. 군사, 산업, 정유 시설이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 보다 이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천 킬로 이상 날아가는 미사일은 귀하고 비싸다. 그런 미사일이 있다면 이스라엘에 중요 시설 혹은 중동 지역에 전략적 목표물을 타격하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제다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다는 무슬림 최대 성지 메카로 향하는 관문 도시이다.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무슬림 순례객이다. 따라서 제다 공항을 공격하거나 메카를 공격하면 이란은 무슬림 세계에서 모든 지지를 상실하고 지도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직접 밟아보기 전까지는 의심하게 된다. 혹시라는 생각에 살짝 두려웠고, 주위 시선이 신경 쓰였다. 사우디 비자를 전쟁 전에 받아놓고 여행을 전부 계획했지만 모두 취소했다. 대신 이집트로 넘어가는 항공권을 제대 10시간 경유 편으로 예약했다. 택지가 제다밖에 없기도 했다. 직항은 비싸서 선택할 수 없다. 경유 편은 전부 중동 도시를 지난다. 공격으로 인한 비행 지연이나 취소 리스크가 없는 유일한 허브 공항은 제다이다. 사전 조사를 위해 여러 오픈 채팅방에 참여했는데, 주재원들도 제다를 통해 한국을 오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제다 공항에 내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일반 관광객에게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도시인만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전부 순례객뿐이었다. 공항에서 빠르게 나와서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시내까지 나갔다. 처음 내린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해안가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메카 출신 청년 3명이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장소를 추천받았다. 요트 선착장에서 음식과 커피를 즐기는 번화가였다. 조심스레 물었다. “나를 데려다줄 수 있어?” 그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레츠고를 외쳤다. 정신없이 대화하며 택시비 3만 원짜리 거리를 이동헀다.
도착한 장소는 아직 오픈 전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오전 7시였다. 실망한 마음도 잠시. 알고 보니 주변에 유명한 모스크가 있었다. 모스크까지 걸어가 모스크를 구경했다. 제다 해안가에는 모스크가 많다. 모스크는 대부분 단출했다. 전부 하얗게 칠해놓은 건물이 푸른 홍해 바다 위에 떠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모스크에 앉아 한참을 묵상에 잠겼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해안가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오랜만에 치안이 안정되고 행정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도시에 왔다. 내가 그간 항상 긴장 상태에 놓여있었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다.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쓰레기 하나 없이 잘 정비된 해안가 공공시설이 반가웠다.
해안가를 걸으며 여러 이민자들을 만났다. 제다는 2~30프로 이주민들이 서비스직과 블루칼라 직종에 종사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어제까지 매일 보던 인도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바닥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비닐봉지에 대충 싸인 탈리(인도 국민 정식)가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많이 만났다. 한국에서도 몇 개 도시를 돌며 일을 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니 학부 시절 배웠던 이론들이 종종 떠오른다. 국제관계이론 중에 국가 내에서 소수 계층이 다른 계층을 착취하던 구조가 중심국가가 주변 국가를 착취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걸으니 발도 아프고 더웠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도로에서 무작정 엄지를 흔들었는데, 5분 정도 지나가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인상이 푸근한 아저씨가 나를 알 발라드까지 태워다 주셨다. 아저씨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그냥 코리아!!!! 나이스!! 코리아 넘버원!! 을 외칠뿐이었다. 나와 말도 통하지 않고, 내가 그에게 줄 건 감사인사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태워주었다. 택시비로 4만 원이 넘는 거리이다. 다시 볼 일 없는 내게 베풀어주는 호의가 감사하면서도 의아했다.
알 발라드는 18세기 제다 구 시가지를 복원해 놓은 역사 거리이다. 몇 백 년 전 세워진 건물을 보수에 상가로 만들어 놓았다. 마치 한국 인사동 한옥마을 같은 장소이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적고, 문을 연 상점도 몇 없었다. 그래서인지 큰 강흥이 없었다. 그래도 구석구석 걸으며 탐험을 했다.
그러던 중 아직 복원 전인 반쯤 무너진 폐허를 발견했다. 큰 폐허를 여기저기 탐험하며 다시 흥미를 찾았다. 18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인위적으로 복원하거나 보수하지 않았더라면 모두 내가 보는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그대로 모습에 오히려 마음에 와닿았다. 그 시절 사람들의 흔적이 건물 곳곳에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낡아서 이가 안 맞는 대문과 반쯤 흐려진 내부 벽화를 보니 그제야 이 거리의 나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탐험을 마치고 다시 히치하이킹을 해보았다. 이번에도 5분 만에 푸근한 아저씨가 나를 공항까지 태워주셨다. 이 아저씨도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잘못 데려다줄까 걱정해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친구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고양시에서 출근길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중동 사람들 만났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 거다. 그날따라 마음이 여유로워 차를 잠시 세웠더라도 그가 20KM 떨어진 인천 공항에 가길 원한다고 하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차를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말도 안 통하고 처음 본 나를 공항까지 흔쾌히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너무 신난 나머지 아저씨 차에 휴대폰을 두고 내린 것이다. 비행기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휴대폰이 없으면 모든 계획이 뒤틀린다. 비행기에 타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소중한 사진과 정보가 날아간다. 이럴 때를 대비해 챙겨 온 서브 폰을 급하게 열어 아이폰에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가 받았다. 그리고 아랍어로 쉼 없이 말한다. 하나도 모르겠다. 패닉을 누르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다행히 청소부 아저씨가 대신 전화를 받아 주었고 30분 만에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모험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뉴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묶여 매일 보도되는 영상과 달리 이곳은 평화로웠다. 전쟁에 대해 질문하면 전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 프로 안전하다고 대답했다. 마치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했는데 다친 곳은 없냐고 질문하는 외국인을 우리가 보는 표정이었다. 실제로도 폭탄이 떨어진 적 없으니 당연하다. 사람들은 일상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역시 직접 밟아보지 않으면 외부 의견에 휩쓸리기 쉬워진다. 항상 비판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권위 있는 매체가, 적당한 직함을 가진 사람이 떠는지와 상관없이 본질을 바라보고 사고해야 한다. 결국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며, 같은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참, 사우디아 항공은 기내 초고속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최고였다. 좌석도 너무 편했다. 시간이 많다면 경유항공을 애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