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큰 착각을 했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수 차례 이용했던 야간 버스였다. 길이 막히면 6시간 넘게 갇혀있을 때도 있었기에 단련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인도 도로 상태를 놓쳤다. 좌 우로 기울어지고 출렁이는 버스에,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심장이 철렁해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인도 사람들은 또 어찌나 떠드는지, 이 모든 방해를 이겨낼 정도로 피곤한 게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전부 내렸다. 8시 10분 전에 기사 아저씨가 깨워서 버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제 만난 호주인 앨런이 우버를 잡고 있었다. 내 데이터는 또 먹통이 되었고, 앨런 도움을 받아 중간에 내릴 수 있었다. 바라나시는 아그라 델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인도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일본과 한국, 중국과 일본 정도 차이로 이국적이 어진다. 인구 120만 인도에서는 소도시에 속하며, 인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힌두교 성지. 오토바이와 사람만 겨우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에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이 있다. 카페, 잡화점, 제사 도구를 파는 가게까지 빼곡하다. 델리와 달리 전신주를 찾기 어렵다. 땅에 매설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적은 인구 탓이지 싶다.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 호스텔로 향했다. 골목마다 소, 원숭이, 개가 나타나는 이벤트가 있어 피해 가느냐 애를 썼다. 아직은 소가 무섭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내 이름이 없다고 한다. 어제 방을 예약한 것이었다. 푹 쉬려고 큰 맘먹고 예약한 개인실이었는데, 또 바보비용을 냈다. 다시 미로를 뚫고 오늘로 예약된 호스텔에 도착했고, 체크인을 1시라 공용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못 잤는지 1시까지 내리 잠을 자다 일어났다. 숙소는 좋았다. 지금까지 잤던 호스텔 중 침구류가 가장 푹신했으며 12명이 쓰긴 하지만 넓은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심지어 온수 샤워까지 가능헀다. 오랜만에 몸을 잘 씻고 손빨래를 할 수 있었다.
3시에 밖으로 나갔다. 어제 배탈 덕분에 27시간을 굶었지만 별로 뭘 먹고 싶지 않았다. 가트를 산책하다 인도 소녀들과 친해져 두 시간 넘게 대화했다. 영어가 잘 통하는 20살짜리들과 대화라 신났다. 인도에 대해 쌓여있는 여러 궁금함을 풀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고국을 사랑한다. 그녀들은 종교가 없음에도 여느 인도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인도인들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때문에 외국인이건 자기들끼리건 친절하게 말은 건네고 어울린다. 자연과 생물에 대한 애정도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나라이기에 길에 원숭이, 개, 소가 수십 마리씩 목격되겠지만. 인도 사회는 우리네 부모님 정도 단계에 있었다. 아직 정이 넘치지만 연애가 일반적이지 않고, 선을 봐서 결혼을 한다고 한다. 힌두 + 이슬람 영향인지 술을 마시는 일 특히 여자가 술을 마시는 일은 금기시되는 듯했다. 한 사람을 만나 평생 사랑하며, 사랑하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소녀가 자매라는 사실과 두 살 터울 여동생이 한 명 더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매들끼리 하루 종일 같이 다니다니 신선했다. 우리 엄마와 이모들의 어릴 적 모습을 본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결국 사회 발전이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걸까. 대학을 위해 다른 도시에서 독립을 해야 한다는 소녀들을 보며 인도도 더 발전한다면 우리나라 처럼 되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내가 어릴 적 만 해도 이웃집 할머니, 아줌마들과 반찬을 나누고 서로 자녀를 돌봐주는 일이 흔했는데 점점 각박해져 가는 사회가 안타까웠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받았던 사랑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잘 나누고 살 수 있으려나. 소녀들이 내일 오전 해 뜨는 걸 함께 보자고 제안해 주었다. 뭐라도 사주고 싶어 라씨 집에 데려갔는데 비건이란다. 내일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방글라데시 다카에 흐르는 강을 보고 와서 그런지 갠지스 강은 맑아 보였다. 더러운 한강 정도 수질이었고 멀리서 보면 푸르렀다. 저 멀리 시야가 흐려지는 곳까지 강을 따라 늘어선 가트들이 도시에 신성함을 더했다.
오직 신성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처럼 느껴졌다. 바티칸에, 메카에 가도 이런 느낌이 들까. 정말 종교적 목적이 가득한 도시인만큼 그에 걸맞은 경관이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발 디딜 틈이 없는 와중에도 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세계 여러 나라에 수변 공간을 봤지만 내겐 한강이 아직 최고다. 갠지스강은 한강에 견줄 만한 첫 해외 강이었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토마토소스에 감자를 으깨먹는 알루 라트? 와 콩 달리(카레)에 감자 튀김을 부숴 먹는 길거리 음식, 라씨 두 개, 달리까지 먹었다. 첫날 둘째 날을 오히려 똥이 잘 안 나왔고, 셋째 날은 배가 아파서 설사를 여러 번 했다. 오늘은 마찬가지로 똥이 안 나온다. 길거리 음식도 결국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인류가 언제부터 이렇게 청결한 음식을 먹었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찰나이다. 지금도 일부 국가에 일부 사람들만 극도로 청결한 음식을 누린다. 어쩌면 우리네 길거리 음식과 위생이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맛있게 먹었고 음식 종류가 한정되어 물리지만 않는다면 7일도 먹을 수 있다. 물론 장 건강은 익숙하지 않아 안 좋아졌지만 뭐가 문제인가.
오늘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형님은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친구들, 관계들, 풀타임 직업으로부터 도망쳤고 반년이 지난 지금은 슬슬 고향이 그립다고 이야기한다. 맞다 나도 도망쳤다. 그리고 현재는 너무 자유롭다. 처음 느껴보는 강도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는 경험을 삶에 끼워 넣는 게 어쩌면 여행에 전부일지 모른다. 무슨 깨달음을 얻어 현자가 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