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며 남긴 시니컬한 직장인 생존술
나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맞벌이를 하던 워킹맘이었다. 연봉 기준으로 상위 10%에 속하는 직장인이었고, 서른 중반에 결혼해 서른 후반에 아이를 낳으며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나는 워킹맘의 삶이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그 이해는 머리로만 하는 얕은 이해에 불과했다. 아이를 품에 안기 전의 나는 일과 육아,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잘 해낼 수 있다고 호기롭게 장담했다. 회사 생활을 10년 넘게 버텨왔으니 육아쯤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주변의 워킹맘들이 모두 잘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기대어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라는 단순한 논리를 믿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나는 결국 16년간 이어온 회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을 주변에 전했을 때, 여러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아깝지 않으세요?”
“요즘 외벌이로는 안 돼요.”
“일로는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은 없으신 거예요?”
“조금만 버텨! 지금 흘리는 눈물은, 나중에 아이에게 금전적 지원 못 해줄 때 흘릴 피눈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들 중에는 진심 어린 조언도 있었을 것이다. 애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고, 혹은 아이를 갖기 전의 나처럼 가볍게 던진 말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고, 워킹맘의 삶은 그 복잡함이 훨씬 더 크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든든한 보육 지원을 받으며 버티고, 또 누군가는 가족 친화적인 제도를 갖춘 회사에서 일하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는다. 또 다른 이는 경제적 여유로 외부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양가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회사는 ‘가족 친화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조직이었다. 직장은 늘 치열했고, 숨 막히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업무와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지만 그 균형은 언제나 기울어져 있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 들려온 주변의 목소리들은 나를 붙잡기도 했고, 때로는 더 흔들리게 만들기도 했다.
“조금만 더 버텨봐, 아이는 금방 크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 특별한 게 아니야.”
이런 말들은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깊은 고립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내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던져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른오징어에서 물을 짜내듯 모든 에너지를 긁어모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산다기보다 매월 통장에 찍히는 숫자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감정적·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컴컴한 도로 위, 무거워진 눈꺼풀, 손아귀 힘이 스르륵 빠져나가던 순간—시속 80km로 달리던 차가 휘청거렸다. 몇 초간 잠에 빠진 것일까. 온몸이 얼어붙고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은 요동쳤지만,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맑아졌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안 될 것 같아, 여보. 우리… 차라리 가난하게 살자.”
남편은 1초의 망설임 없이 나를 응원했고, 그렇게 나는 16년간의 사회 경험을 뒤로하고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직장생활이라는 길을 벗어나려고 하니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참 다양한 풍경이 있었다.
이직에 성공했던 순간은 4월의 공원에서 꽃길을 마주한 듯 환하고 설레었다.
승진의 기쁨은 마음속에서 의욕과 열정이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비바람 몰아치던 날도 있었고, 진흙길을 질척이며 걸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가파른 길을 오르던 날도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돌이 가득 든 가방을 짊어진 채 걸어야 했던 나날도 있었다.
모든 시간을 지나온 지금,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버텼을까?”
그 질문이 떠오를 만큼 스스로가 대견했고,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렇게 버텼습니다. 당신이 듣고 싶다면,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