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다시 읽는 순간, 불필요한 두려움은 힘을 잃는다.
“아… 오늘 회의 들어가기 싫어요. 저는 임원 A가 무서워요.”
점심을 마치고 커피를 홀짝이던 순간, 후배가 툭 내뱉은 말이었다. 단순한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 말속에는 직장 생활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이 배경으로 깔려 있었다.
임원 A는 큰소리로 사람을 몰아붙이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상대를 위축시키는 무례한 사람으로 유관 부서에서도 그의 이름은 자주 회자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요란한 목소리에 비해 실력을 인정받거나,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조직 내에서 불필요한 긴장과 소음을 만들어내는 방해물에 가까웠다.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왜 무서워?”
후배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불같이 화를 내시니까…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실수라도 한 줄 알더라고요.”
그렇다. 큰소리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특히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큰소리가 나면,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뜨거운 시선이 집중된다. 동물들도 큰 소리를 낸다.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다른 개체를 향해 경고의 의미로 포효하기도 하고, 싸움 중에 흥분을 알리기 위해서도 큰 소리를 낸다. 야생에서 소리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 역시 본능적으로 큰 소리에 관심을 집중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함, 사람들의 웅성거림, 빨라진 심장 박동, 뜨거워진 체온… 그것들이 과연 후배가 말한 ‘무서움’의 징후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무섭게 만들려는 의도’에 그대로 휘말린 것일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아직도 이 말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서 불필요하게 고압적인 태도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들. 일부는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로 착각하여 우러러본다. 그러나 무례함을 동경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차분하게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있잖아, 나는 바퀴벌레가 무서워. 작건 크건 바퀴벌레만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팔의 털들이 쭈뼛쭈뼛 서. 그런데 바퀴벌레가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달려들진 않잖아? 그냥 그 모습만 봐도 소름이 돋는 거지. 그걸 진짜 공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그건 공포가 아니라 혐오(Disgust) 같아.”
후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A도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네가 말하는 ‘무섭다’라는 표현은 왠지 그를 올려치기 해주는 것 같아.”
그날 이후 우리는 A를 ‘바퀴벌레 같은 존재’로 분류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불쾌한 존재로.
어릴 적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단어는 단순했다.
“기뻐”, “슬퍼”, “무서워.”
하지만 자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늘어났고, 오히려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졌다. 후배가 A에게 느낀 감정은 놀람과 불쾌함이 뒤섞인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무서움’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진짜 공포는 무엇일까. 나는 후배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짝사랑하는 사람과 엘리베이터에 탔어.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이 순간을 매력 어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미소를 장착하고 눈웃음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방귀가 나와버린 거야. 나조차 숨이 막힐 만큼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그 사람이 코를 막으며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그게 진짜 공포 같아.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잖아.”
후배는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럽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순간의 긴장과 두려움은 그렇게 가볍게 풀렸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무거운 생각들은 솜털처럼 흩날린다.
‘무서움’이라는 단어는 때로 과분하다. 구름이 바람에 밀려나면 산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듯, 놀람과 심장이 뛰는 소리는 감정을 가리는 구름이 될 수 있다. 침착한 마음으로 내가 느낀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산은 예상보다 더 크고 웅장할 수도 있고, 혹은 상상보다 더 황량하고 왜소할 수도 있다.
마음을 다시 읽어보자. 그리고 무섭다는 감정을 ‘혐오’, ‘불쾌함’, ‘싫음’, ‘이상함’으로 다시 이름 붙여주자. 감정을 다시 읽는 순간, 불필요한 두려움은 힘을 잃는다.
직장 생활은 다양한 감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억울함, 때로는 분노, 때로는 허탈함이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그 감정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찾을 수 있다. 목소리 큰 사람에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바퀴벌레처럼 불쾌한 존재일 뿐이다. 바퀴벌레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치워버리면 그만인 존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힘이다. 감정을 정확히 바라볼 때, 우리는 불필요한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신으로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