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함'이라는 무기로 나를 멕이는 사람들
바다보다 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겉모습이 투명하다고 얕은 것도 아니고, 어둡다고 반드시 깊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표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오판의 대가는 대개 뒤늦은 후회나 상처로 돌아온다. 회사라는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는 이런 오해가 더 쉽게 생긴다. 내가 만난 A 씨도 그랬다.
그의 첫인상은 상냥했다. 그의 느리고 차분한 말투와 호들갑을 떨지 않는 태도는 그가 진중한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나 사람의 진심은 오래 숨길 수 없는 법.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말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른바 교토 화법을 쓰는 사람이었다.
교토 화법은 직접적인 비판을 피한다. 다정한 말씨라는 갑옷 아래, 서늘한 비수를 숨기는 기술이다.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 같지만 불편한 속뜻을 단단히 감추고 상대방을 향한 비난을 숨기는 것은 교토 화법의 특징이다. A의 말은 늘 관심과 공감이라는 옷을 입고 다가왔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비난이 숨어 있었다.
“워킹맘이라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저는… 음…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 퇴근하시나요? 워킹맘이라 팀원들이 많이 배려해 주시나 봐요.”
그의 말은 외형상으로는 염려 섞인 가벼운 대화처럼 들리지만 진짜 의도는 그만두라는 권유였고, 빠른 퇴근으로 ‘팀에 부담을 준다’는 암시였다. 또 다른 장면도 있었다.
“그분 열정적이시죠. 그런데 저는 좀 안타까워요. 인정을 못 받으시는 것 같아서요.
저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동료로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속 뜻은 차가웠다. 나서기는 좋아하지만 성과는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 차라리 다른 일을 찾으라는 권유였다. 직접적인 비난은 아닌 듯하면서도 대상의 가장 약한 부분을 손톱 끝으로 쓱 긁고 지나가는 방식. 말끝에 남는 미묘한 불쾌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됐다.
그의 말은 늘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포장됐지만, 끝은 늘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문장이었다. 그는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는 싫었지만, 남을 헐뜯고 싶은 마음은 감추기 어려운 듯했다. 그런 A 모습은 본인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높은 위치에 서 있다고 믿는 듯했지만, 나의 눈에 그는 얄팍하고 초라해 보였다.
물론 회사에는 진심으로 동료를 걱정하는 상냥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걱정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행동에 녹아져 자연스럽게 나온다. 불편한 말을 덮기 위해 ‘걱정해 준다.’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다. 말로 인심을 잃는 사람들은 상처 주는 말을 하고도 ‘나는 악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꼬아서 들었다고 말한다. "코드는 유머와 같다. 설명해야 한다면 나쁜 것이다." 한 개발자의 이 말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구구절절 변명을 보태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대화다.
교토화법의 겉치레 그리고 돌려 말하는 특징은 일본 교토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체면을 중시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는 습관이 오랜 시간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맥락이 회사라는 공간으로 옮겨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은근한 공격으로 변질되기 쉽다. 직설적인 비판은 차라리 명확하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토 화법은 상대를 애매한 불안 속에 머물게 한다.
‘이거 나 멕이는 건가?’
'내가 괜히 과민하게 받아들인 걸까?'
‘불편하다고 말하면 피해 의식 있다고 할까?'
'혹시 나만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의구심이 들 때,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검열한다. '내가 예민한가?'라며 자신을 의심하는 사이, 상대의 독설은 은근하게 혈관을 타고 퍼진다. 하지만 기억하자. 세상에는 나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으며, 그들은 교토 화법의 비겁한 다정함을 이미 다 읽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를 깎아내려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감정의 공간조차 내어줄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과는 업무 이상의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 불편한 말을 쉽게 던지는 태도는 본성과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것을 바꾸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성장 속도가 느리고 자기 계발의 의지도 낮다. 본인에게만 관대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으니, 상대방이 더 빠르게 나아가는 듯 보이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 즉, 그 노력을 하찮게 끌어내려 본인의 속도에 맞추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자리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나는 이제 안다.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는 말이 반드시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진심은 결국 태도와 행동에서 드러난다. 말은 포장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껍질은 벗겨지고 본질은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교묘한 화법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투명하고 단단하게, 필요한 만큼만 관계를 맺으며 나는 내 길, 내 걸음의 속도를 지켜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