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개미와 베짱이

우리가 알던 베짱이는 사실 월급루팡이 아니었다.

by 비타민W

내 아이는 동화 〈개미와 베짱이〉를 참 좋아한다. 봄·여름·가을 내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겨울이 되자 굶주리고, 성실한 개미는 관용을 베풀어 함께 겨울을 난다. 동화 속 세계는 단순하다. 부지런함은 미덕이고, 게으름은 벌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역할놀이를 할 때 아이는 늘 개미를 맡는다. 베짱이는 생각 없이 놀기만 하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존재니까.

그런데 어른의 시선으로 이 동화를 다시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현실에서도 베짱이는 정말 패배자일까?


내가 만난 팀장 A 씨는 늘 “사람 좋은 선배”였다. 웬만한 일에는 웃어넘겼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퇴근 후엔 동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고, 밥도 잘 샀다. 명절이나 기념일마다 작은 선물이나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그는 전형적인 ‘베짱이’였다. 늘 여유로웠고 호탕했지만 그 여유의 대가는 고스란히 팀원들의 몫이었다. 그는 팀장임에도 중요한 결정을 미뤘고, 타 부서와의 협의에서는 늘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결국 팀에 불필요한 잡무를 잔뜩 가져왔다.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도 A 씨는 마감 직전까지 묵혀두었다가 결국 혼자 처리하지 못하고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작 본인은 사무실을 비우기 일쑤였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조차 시선은 모니터가 아닌 휴대폰 속 주식 차트에 가 있었다. 결국 마감 직전 터져 나오는 일들은 팀원들이 십시일반 나눠 메워야 했다. 우리는 그를 '월급 루팡'이라 비난하며, 적어도 우리가 그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성실한 개미라고 믿었다.


“또 자리에 안 계시네요.”

“연락이 안 된다고 거래처에서 저한테 직접 전화 왔어요.”

"A 팀장님, 제출 기한 지났다고 빨리 확인해 달래요!"

“사람은 참 좋은데... 이 정도면 팀장님 월급 우리가 나눠 가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던 어느 날, 저승사자로 불리는 까다로운 부서장이 부임했다. 모두가 “이제 A 팀장도 끝났다”라고 고소해했다. 하지만 부서장의 압박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A 팀장은 퇴사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업무 강도를 못 버티고 도망가는 거라며 비웃었지만, 진실은 정반대였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를 마친 ‘파이어족(FIRE)’이었다.


퇴사 후 그와 나눈 대화는 꽤 얼떨떨했다.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던 ‘무능한 베짱이’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치밀한 전략가였다. 그의 꿈에는 임원 자리도, 회사에서의 영광도 없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내 시간의 주권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회사를 자아실현의 장이 아닌, 자본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했다. 그가 회의에서 결론을 미루고 감정 소모를 피했던 건, 회사에 단 1g의 에너지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철저한 계산이었다.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끌어안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버티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쉽게 사람을 평가한다. 게으르다. 무책임하다. 월급 루팡이다. 물론 정말 무책임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게으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패배자이거나 멍청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회사 밖의 삶을 더 치밀하게 설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착하고 성실한 개미로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A는 나쁜 동료였을지언정, 자기 인생에는 가장 충실한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회사 일 말고, 네가 꿈꾸는 너의 미래를 위해 오늘 무엇을 했어?”


그가 툭 던진 질문에 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회사 일과 남들의 시선에 매몰되어 정작 ‘내 삶의 기획’은 방치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내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기록하다 보면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선명해질 거라면서.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은 막연해졌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점점 선명해졌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성실한 개미로만 늙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이었다.


나는 이제 아이에게 무조건 개미처럼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알고, ‘내 미래’를 스스로 그려보는 연습을 시켜주고 싶다. 현실의 동화는 차라리 이런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봄·여름·가을 동안 베짱이는 좋아하는 노래를 매일 부르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냥 놀기만 한 게 아니었어요. 그는 노래를 더 잘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자기만의 무대를 꿈꿨지요. 겨울이 되자,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베짱이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베짱이는 멋진 공연을 하러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개미는 깨달았습니다.

‘아, 저 베짱이는 게으른 게 아니라 자기만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오늘 나는 부지런히 곡식을 나르는 개미일까, 아니면 나만의 비행기를 예약하는 베짱이일까.

이전 03화교토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