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장이 '착한 호구'일 때 벌어지는 비극
조선 시대 신분제 가운데 하나였던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은 자녀의 신분을 어머니의 계급에 따르게 하는 제도였다. 양인 남성과 천인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노비가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인생의 난이도가 결정되는 셈이었다.
오래전 사라진 이 제도는 놀랍게도 21세기 직장 안에서 기묘하게 재현된다. 팀장이 ‘자발적 노비’의 길을 택하면, 그 밑의 팀원들 역시 자동으로 노비의 삶을 대물림받기 때문이다.
회사는 구성원의 역할(Role & Responsibility)이 정해진 곳이다. 역할에 따른 지표(KPI)가 있고, 그 지표로 성과를 평가받는다. 만약 역할의 범위를 훌쩍 넘는 요구가 들어오면 당당히 “No”라고 말해야 한다. 남의 일에 에너지를 쏟느라 본업을 놓치면 결국 1년 뒤 초라한 인사평가를 받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역량 밖의 일임에도 그저 “네!”만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실속 없는 ‘호구’가 되어버리고 만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상위 직급자’일 때다. 팀장이 호구라면 그때부터 팀 전체는 단체로 노비종모법의 수혜(?)를 입는다.
내가 함께 일했던 A 팀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거절을 어려워했고, 부정적인 의사 표현은 거의 금기어처럼 여겼다. 다른 팀의 무례한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의 요청에도 고개를 숙이며 수용했다. 그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근무시간 외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가며 실속 없는 일을 처리했고, 그로 인해 집에서도 “도대체 몇 시에 들어오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의 ‘착한 병’이 팀 전체로 전이된다는 점이었다. 다른 팀원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요청을 거부하면, 상대는 곧장 만만한 A 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부탁은 100%의 확률로 다시 팀원들에게 떨어졌다. 예외와 편법이 상식이 되자, 타 부서들은 이제 담당자를 건너뛰고 바로 팀장에게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규정에 맞지 않는 예외 적용과 편법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기면 뒷수습 또한 A팀장과 팀원들의 몫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팀원들의 개인적인 역량까지 여러 부서에 ‘재능 기부’로 내놓았다.
“우리 팀에 A님이 경험이 많으시니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 팀에 B님이 매크로를 잘하니 제가 부탁해 보겠습니다.”
“안 되는 것이지만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팀장이 스스로 '자발적 돌쇠'가 되는 것은 자유지만, 죄 없는 팀원들까지 '쇠똥이, 이월이, 삼월이'로 끌어내리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팀원들의 불만은 빠르게 쌓여갔다.
“다른 팀이 완전히 저희를 아랫사람 부리듯 해요.”
“제 일도 바쁜데 저쪽 일 해주느라 점심도 못 먹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 엑셀 도와주려고 입사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외부적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하며, 각종 쓰레기를 보물처럼 챙겨 와 팀원 손에 쥐어 주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참다못한 나는 결국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우리 팀에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요!”
환하게 웃는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조선 시대 대감집 마당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노비가 옆집 노비에게 "우리 집 사월이는 밥을 참 잘하고, 돌쇠는 셈이 빠르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꼴이라니.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감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같은 노비끼리 재주를 뽐내봐야 돌아오는 건 '품앗이'라는 명목의 추가 업무뿐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직장에서 잘못된 칭찬은 팀원을 야근하게 만들 뿐이다. 그저 자기 위안일 뿐, 경제적 보탬도 없고, 사회적 지위 상승도 없다. 진정한 리더라면 팀원의 재능을 외부에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보호'했어야 했다. 잔재주가 소문이 나면 잡일만 늘어난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어느 날 A팀장은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본인은 바빠도 “Yes”를 외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팀원들이 따라주지 않거나 거부하는 것이 무척 서운하다고 했다. 그는 “No = MZ 문화”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팀원들의 불만과 문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연민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요즘 직장 생활을 ‘현대판 노비 생활’이라고 부르곤 한다. 나는 운이 좋아 여러 대감집을 전전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 회사에서 호의는 절대 호의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명언이 회사에서 가장 정확하게 작동한다. 호의는 쌓이면 덕이 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의무가 된다. “네”라는 말은 한 번쯤은 미덕일 수 있지만, 열 번쯤 되면 족쇄가 된다. 결국 ‘Yes-man’은 스스로 만든 족쇄에 묶여 노비가 된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은가.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는 자기 위안 속에서, 결국 노비 짓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정신 차려야 한다. 회사는 호의를 기억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Yes-man’을 더 깊은 굴레로 밀어 넣는 곳이다. 노비종모법이 신분을 대물림하듯, 회사에서도 ‘Yes’만 외치는 태도는 스스로를, 그리고 때로는 자식 같은 내 팀원들까지 영원한 현대판 노비로 만드는 길이다.
결국 회사에서 당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호의가 아니라, 당신이 긋는 ‘선(Lin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