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回光返照), 지는 해를 무서워하지 마라.
회사의 생태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중간 관리자'라는 위치가 그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위로는 앞서가는 리더의 뒷모습이 보이고, 아래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눈빛이 한눈에 담기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서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다 보니, 사람을 보는 두 가지 눈이 생겼다. 하나는 나이가 든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또 하나는 지금 당장 반짝인다고 해서 그게 영원한 실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해는 지기 직전에 가장 붉다.
어느 날 한 후배가 내게 물었다. “선배님은 임원 A님을 대할 때 참 당당해 보여요. 안 무서우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하나도 안 무서워. 곧 꺼질 불인 게 보이거든.”
실력도 인성도 없이 직급만 가진 이들은 내 눈에 ‘유통기한’이 명확히 보인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처럼 시장에서 유통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존재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직급은 낮아도 눈빛이 살아있는 후배들이다. 인성까지 갖춘 똑똑한 후배를 마주할 때면, 그들이 오를 산의 높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절로 겸손해진다.
기운이 빠져있던 후배에게 나는 농담 섞인 진심을 덧붙였다.
“꺼지기 전의 불이 가장 밝다고 하잖아. 네가 보고 있는 A님은 지금 생애 가장 밝은 빛을 내는 중일지 몰라.
하지만 그 빛이 앞으로 더 빛날 것 같지는 않다. 설령 더 빛난다 해도 내가 그걸 볼 일은 없을 것 같고.”
나는 후배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오히려 네가 더 무섭다. 일에 재미를 붙이고 열정적으로 변해가는 너는 훨씬 더 큰 빛을 낼 사람 같거든. 그러니 나중에 성공하면 나 모른 척하지 마라?”
예전 우리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뜨는 해는 눈이 부셔서 똑바로 보지도 못해도, 지는 해는 누구나 다 쳐다보는 법이란다. 그러니 지고 있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 말아라.”
연차는 선착순이지만, 실력은 추월차선이다.
나는 운 좋게도 승진의 기회들을 제때 붙잡으며 비교적 순탄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내 걸음이 무색해질 만큼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후배들을 보면 가끔은 등 뒤가 서늘해질 정도다. 나보다 어리고 연차는 낮지만, 일을 즐기는 친구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가속도가 붙어 저만치 앞서나간다.
한 상장 기업의 대표까지 올랐던 이가 재계약 불발 앞에서 인성의 바닥을 드러내며 추락하는 것도 보았고, 능력 없이 충성심 하나로 버티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들도 수없이 보았다. 반면, 사원으로 입사해 실력만으로 대표직까지 오른 지인 B 씨처럼 드라마 같은 성장을 이뤄내는 이도 보았다.
그녀는 똑똑했고 열정적이었다. 가끔 던지는 쓴 조언조차 상대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기에 기꺼이 고맙고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결국 앞서가던 상사들을 하나둘 제치고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높아만 보이는 산도 옆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먼저 출발했다고 반드시 먼저 도착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중요한 건 '언제 왔느냐'가 아니라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느냐'다.
당신의 진짜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당신 위에서 누군가 유난히 기세등등하게 빛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회광반조(回光返照)'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기 직전, 일시적으로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 말이다. 누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만큼 큰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당장의 기세에 눌려 스스로를 작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물어가는 빛은 당장 눈부실지언정 온기를 잃어가지만, 이제 막 떠오르는 당신의 빛은 세상을 데울 잠재력을 품고 있다.
'지는 해'들에게 쫄지 마라. 당신의 진짜 전성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