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과학 - 내 얼굴을 망치는 직장상사

당신의 얼굴은 지금 어떤 자서전을 쓰고 있나

by 비타민W

사람들이 말하길,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 속 내 얼굴은 증거품을 한아름 안고 나를 고발하고 있었다.


양 볼의 기미는 “선크림 좀 제때 바르지 그랬니?”라고 꼬집고, 이마 중앙의 잔잔한 주름은 “짜증 좀 덜 냈으면 좋았잖아”라며 넌지시 타박을 준다. 그래도 다행히 눈가에 잡힌 주름들이 “그래도 웃을 일이 꽤 많았잖아” 하고 위로를 건네니, 아주 나쁜 인생을 산 것 같지는 않아 안도됐다. 얼굴 하나가 검사, 판사, 변호인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 나에게 조용히 다짐했다. 앞으로 더 웃고, 덜 화내자고.


반면교사

어느 날, 지루한 회의가 길어지며 집중력이 흐려질 때쯤 참석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일종의 무료함을 달래는 관상 감정 시간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임원 A씨였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절대 저렇게 늙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만드는 ‘반면교사’였다.


사실 나는 A와 업무 궁합이 최악이었다. 나는 결과로 증명하며 자율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반면, 그는 과정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알고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마이크로 매니징형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건 성향의 차이였다. 나는 논리적으로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직설파'였고, 그는 자신의 권위에 토를 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독재자'였다. 나의 솔직함은 그에게 늘 반항으로 낙인찍혔다. 우리는 처음부터 같은 우리에 넣으면 안 되는 동물이었다.


그는 불독을 연상시키는 외모만큼이나 평판도 좋지 않았다. 욕설만 안 섞었을 뿐, 공공연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부하 직원의 무능을 지적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나 역시 타깃이었다. 얇은 회의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그의 고함은 사무실 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남들 고생하는 거 안 보여요? 당신은 그 직급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어!”


모멸감에 가득 찬 비난이 쏟아질 때면, 나는 무표정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모멸감은 라이브로, 사과는 메신저로

잠시 후, 사내 메신저를 통해 그로부터 황당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다 너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소리다."

"나는 너를 몰아붙였을 때 네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어."

"너는 더 해낼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하니까 내가 답답해서 그래.”


가스라이팅 교과서 1장에나 나올 법한 궤변이었다.

모멸감은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라이브로 주고, 수습은 메신저 몇 줄로 때우는 방식이라니.

사과를 DM으로 조용히 때우는 그의 용감함과 어른스러움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얼굴이 쓰고 있는 자서전

다시 회의실 안, 열변을 토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불독처럼 처진 양 볼에는 심술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미간에는 평생 인상을 쓰며 살아온 흔적인 깊은 골이 패어 있었다. 남이 말할 때 정면으로 눈을 보지 않고 곁눈질로 흘겨보는 습관은 시기와 질투를 뿜어내는 듯했다.


그 얼굴은 마치 "나는 평생 타인을 시기하고 눈치 보며 살았다"는 자서전을 온몸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공포가 있었다. 저 사람의 패악질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를 상대하느라 나 역시 독기를 품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미래의 얼굴에도 저 심술궂은 주름과 비열한 눈빛이 남을까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개정판도 없이, 절판도 안 되는 자서전. 나는 그와 같은 문구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미간을 펴고 표정을 고쳐 잡았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가는 것만큼 끔찍한 비극은 없으니까.


내 얼굴은 어떤 자서전을 쓰고 있는가

오래 들여다볼수록, 얼굴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내 얼굴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타인의 비열함에 내 미간을 내어주기에는 내 얼굴이 너무 아깝다.

미움보다는 너그러움이, 짜증보다는 여유가 내려앉은 '베스트셀러' 같은 얼굴로.

그렇게 천천히, 나만의 근사한 자서전을 써 내려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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