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당신을 지켜줄 거라는 치명적인 착각
지금은 누구보다 차갑고 냉소적인 프로 직장인이지만, 나에게도 풋풋한 신입 시절이 있었다. 나의 냉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성격이 아니라, 특정 사건을 계기로 단단하게 굳어진 흉터 같은 것이다. 회사에 열렬한 충성을 바치지 않고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갖게 된 것, 그 가혹했던 사건은 나의 첫 직장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인턴 경험은 있었지만, 한 조직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신없는 적응기를 지나 회사에 익숙해질 때쯤, 타 부서의 A 씨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12살 연상인 그의 데이트 신청이었다.
20대 중반인 내게 30대 후반인 그는 너무나 '어른'으로 보였고,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당혹스러웠다. 나는 그가 무안하지 않게 최대한 에둘러 거절했다. 선배에 대한 예우이자, 조직의 평화를 위한 배려였다.
그 예의 바른 거절이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거절당한 '어른'의 보복
그의 보복은 저열했다. 당시 나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몸이 성치 않았고, 급성 신우신염으로 응급실을 오가던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릴 정도로 통증이 심해 반차를 쓰고 서둘러 퇴근하려 했다. 병명이 생소할 동료들에게는 그저 "배가 너무 아파서 가본다"라고 짧게 인사를 남겼다.
그 대화를 엿들은 A 씨는 곧장 악의적인 소설을 써서 주변에 전파했다.
누군가 물었다. "W 씨 어디 갔어?"
그러자 A 씨가 나서서 대답했다.
"아파서 반차 냈어요. 여자들 다 아는 '그날' 있잖아요. 할 때 됐거든요."
이야기를 들은 가까운 동료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신우신염으로 전날 응급실 갔다 온 애한테!"
머쓱해진 A 씨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지만, 그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내게 남자친구가 생기자 그는 더 치명적인 헛소문을 퍼뜨렸다. "같이 모텔 들어가는 걸 봤다", "더러운 애다" 등 사회 초년생의 삶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말들을 쏟아냈다.
길고 지루했던 싸움의 결말
참다못한 나는 팀장의 도움을 받아 인사팀에 고발했고, 그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 간단한 결말 같았지만 그 과정은 길고 소모적이었다. 그가 보낸 이메일과 메시지를 일일이 캡처해 제출하고, 인사팀에서는 미리 준비한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내며 내 진술을 녹취해 갔다. 그리고 동료들까지 불려 가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지며 회사 내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어느새 가해자보다 구경꾼들의 시선을 견디는 일이 더 피로해졌다.
노력에 비해 결말은 초라했다. 그가 받은 징계는 고작 '근무지 이동'이었다. 하지만 이름뿐인 조치였을 뿐, 같은 건물 내에서 층만 바뀐 채 그와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되었다. 그는 오가며 내가 위축되도록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아무 이유 없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하고 외치거나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기괴한 시위를 이어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완벽히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매일 숨 막히는 공포를 견뎌야 했다.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가해자의 상사는 내 자리로 와서 이렇게 말했다.
"노총각 마음에 불을 지르고 받아주지 않으니 애가 엇나가지! 애가 얼마나 착한데."
그는 2차 가해를 마치 재미있는 농담처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역겨운 미소를 보며, 나는 분노보다 허탈함을 먼저 느꼈다. 싸워야 할 대상이 한 명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참지 않고 임원에게 2차 가해를 보고했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라 해줄 게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도움을 줄 방법을 찾지 못한 팀장과 나는 무력감과 답답함이라는 모래주머니를 발에 매단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나의 공포는 귀걸이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본사에서 온 동갑내기 B 씨가 프로젝트를 위해 임시로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A 씨는 B 씨에게도 접근해 내 험담을 늘어놓더니, 결국 "너 정말 예쁘다"며 B 씨의 귀걸이를 만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기겁한 B 씨는 즉시 인사팀에 신고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인사팀은 A 씨에게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 것을 통보했고, 얼마 후 그는 해고당했다. 즉각적인 분리이자 단호하고 강력한 대응이었다. 그토록 견고하던 가해자의 자리가 단번에 치워지는 것을 보며 시원함보다 뜨거운 분노와 허망함이 몰려왔다.
나의 몇 달간의 사투는 외국인 동료의 귀걸이 한쪽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했구나...
내가 그간 피를 말리며 증명하려 했던 고통보다, 본사 직원의 귀걸이를 만진 무례함이 훨씬 무겁게 취급되는 현실에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깨달았다. 회사라는 조직에는 개인을 지키는 울타리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내 울타리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
이후 나는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자기 계발에 집중했고, 조금 더 차가운 직장인으로 성장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애썼다.
물론 모든 회사가 이렇지는 않다. 따뜻한 사람들이 조직문화를 인간미 있게 만드는 곳도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첫 상처를 가려줄 만한 조직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배운 교훈은 단 하나다. 내 울타리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는 것.
포식자를 만났을 때 빠르게 달릴 다리, 수풀 사이에 숨을 지혜, 몸을 보호할 강한 등껍질. 무엇이든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회사는 나를 지킬 보호막이 되어 주지 않는다.
평화로운 초원에 있다고 방심하지 마라. 당신의 울타리를 대신 세워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든 이 초원을 떠날 수 있는 나의 강인한 다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