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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유진 Oct 16. 2024

내게 행복감을 주는 일상의 순간들

소소한 행복은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행복이 제 삶을 어떻게 채워주었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1. 선택한 시간, 새벽 5시


아침 5시가 되면, 딸이 만든 핸드메이드 시계의 알람이 울립니다. 가족들이 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새벽 기상의 동력입니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미지근한 물 한 잔 마시고, 유산균을 털어 넣습니다. 멍한 정신을 날리기 위해 잠시 식탁에 앉아봅니다. 새벽 5시는 제가 선택하여 확보한 시간입니다. 당장 무언가를 생산해 내진 않지만, 이 시간을 지키려는 저의 완고함과 고집스러움을 받아 주는 새벽입니다. 이 넓고 깊은 새벽으로 인해 담담한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2. 깊은 포옹


남편의 눈은 바다와 같습니다. 23살의 모솔이었던 저는 남편의 깊고 갈색 빛 도는 눈동자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제가 이리저리 튀는 선택들과 감정들을 헤쳐나갈 때, 그는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립니다. 끝내 어쩔 줄 몰라 뒤를 돌아보면 그는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힘 있게 나서주며 정신적, 영적으로 깊은 포옹을 해줍니다. 우리 둘 다 부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궁핍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남편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할 각오로 결혼했습니다. 비록 깜냥은 안되지만, 남편의 꿈을 담을 제 그릇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꼭 안아줄 때면, 깊은 심호흡을 한 후,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바다로 들어갑니다. 신께서 여자로 창조하셨을 때 선물해 주신 행복감을 누립니다.


3. 글 쓰는 바보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책상에 앉아 신문을 읽거나 기사를 교정하시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안방 창가에 할아버지의 책상이 있고, 철제 필통에는 빨간 색연필과 볼펜, 연필 그리고 엄지손톱만 한 지우개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갱지 같은 500자 원고지에 글을 쓰셨습니다. 할아버지 글씨는 동글동글 오이소이 무침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성함과 비슷해서 그렇게 느꼈나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글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적은 글을 자주 할아버지께 보여드리진 않았지만, 가끔 제가 쓴 글을 보여 드리면, 며칠 뒤, 소파에 앉으셔서 “유진아, 글은 쉬워야 한다. 쉬운 글이 맛있는 글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조언은 지금도 글을 쓸 때면 간결하고 쉽게 쓰게 합니다. 글쓰기 유전자를 남겨주신 할아버지의 시나 글을 읽을 때면, 제 곁에 오셔서 “유진아, 글 쓰는 바보가 되어라. 그게 너에게 잘 어울린다”라고 이야기해 주시는 듯합니다.


4. 남겨진 자연의 날갯짓


 집 앞 작은 수로에는 백로가 자주 날아들었습니다. 연고 없는 이 마을로 오게 되었지만, 백로는 마치 이곳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가족을 찾아와 주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창문에 몰래 기대어, 조용히 백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듯했습니다. 백로가 그만의 속도로 걷거나, 날개를 펴서 하늘로 오를 때면 선비가 긴소매를 휘날리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백로에게서 제가 늘 바라던 우아함과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5. 일상의 행복을 끌어안기


 요즘 들어 특별한 일들도 영겁의 시간에서 바라보면, 순간일 뿐임을 자주 떠올립니다. 큰 물결이 일 때면, 그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흐르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때론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도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경유지일 뿐, 최종 종착지가 아니니까요.

일상의 순간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고, 그 순간들이 삶에 빛을 더하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극복하게 되는 것이고, 칠흑 같은 시간은 그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요.


일상의 행복이 보이지 않는 미래의 위안이 되길 바며, 우리에게 찾아오는 작은 기쁨들을 잘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더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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