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소리 없이 지나간다
거울을 봐도 나이를 모르겠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도 있고, 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아한다. 누구나 젊어지기를 바란다. 대부분은 나이가 드는 것이 젊음보다는 보기가 안 좋고, 모든 것에 서툴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소꿉장난을 하면서 어른 흉내를 냈고, 향기 좋은 어머니의 화장품을 쓰고 싶었다. 화장을 하면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이유도 없이 어른에 대한 동경이었다. 어른이 되면 부모님의 잔소리도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리라 생각했다. 어른들의 세계는 멋지고 화려해 보였다.
모르는 것은 어릴 때나 지금에도 좋게만 생각한다. 모르면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의 업무나 부서는 좋아 보인다. 막상 일이 바뀌거나 부서가 바뀌면 잠시 좋아한다. 얼마가지 않아 내가 못 봤던 일들을 하다 보면 실체를 알게 된다.
누구나 산너머 남촌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는 것이다. 나는 2년 전 캐나다 토론토와 몰타에서 1년을 살다 왔다. 유학을 가기 전에 나는 몇 개월을 설레며 준비를 했다. 외국에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하지만 막상 외국에 살아보니 힘든 점이 많았다. 가장 힘든 것은 첫째,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몸을 힘들게 했다.
불행스럽게도 내가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변경되었다. 비싼 비행기 타고 13시간 이상을 왔는데 숙소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속상했다. 수업도 중요하지만 외국인들과 급우로써 추억을 쌓고 싶었다.
다행히 2개월 뒤 출석으로 변경되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출석인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이상의 거리였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지역명은 스카버러에서 킹스트리트 이스트이다. 그때를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때 거닐던 스카버러 클리프와 로제타 맥클라인 가든을 걷던 그때의 기분이 그대로 와닿는다. 스카버러는 외곽인 만큼 절벽들과 가든은 숨이 막힐 정도로 환상적이다.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발가락에 물집이 터질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그 이후로 내성이 생겨서 걷는 데는 내성이 생겼다.
관광객이 볼 수 없는 절경은 설명도 쉽지 않다. 토론토에서 가든은 이름 그대로 정원이다. 우리나라의 파크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위치한 로제타 맥클라인 가든은 정원을 사랑하고 가꿨던 로제타 맥클라인이 사망한 뒤 그녀의 남편인 로버트 왓슨이 토론토시에 1959년 기부했다.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넓은 정원을 옆으로 절벽을 산책할 수 있다. 정원에는 ㅇㅇ님 잠들다고 하는 많은 나무들과 ㅇㅇ님을 그린다고 쓰인 수많은 벤치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죽은 이를 기리는 나무와 벤치들을 보며 좋은 문화라고 생각했다. 기부와 봉사가 익숙한 사람들, 남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잘 찾아내서 기부하는 아름다움에 부럽기만 했다.
내가 토론토에 살면서 나도 그들 문화 속에 익숙해지려고 그들과 봉사를 했다. 그들에게 봉사와 기부는 일상생활이다. 봉사의 종류도 다양하고, 기부방식도 다양했다. 한국에서 봉사하려고 몇 차례 시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절차도 복잡하고 방법도 본인들 위주이다.
사람들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사회구조 속에 기부와 봉사는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 많이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토론토의 방식을 배워 연계시키면 좋겠다. 토론토에 있는 동안 학교의 교육과 사회는 기부와 봉사로 연계되어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학교 때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이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막았던 기억이 난다. 토론토 학교에서 수업은 질문이 당연한 곳이다. 좋은 질문을 하도록 선생님은 도와준다. 질문 속에 새로운 질문이 생기며,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 속에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된다.
외국에서의 외로움 한편에는 새로운 세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세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더 성장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어느새 나는 55세가 되었어도 지금 나이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에 확신은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후회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