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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AI의 새로운 전략적 방향

천하삼분지계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

지난 7일 대전 KAIST에서 개최된 '2025 과학기술정책 포럼'에서 이광형 KAIST 총장이 제시한 'AI 천하삼분지계' 전략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AI 양강 구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제3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삼국지의 제갈량이 유비에게 제안한 천하삼분지계를 현대 AI 경쟁 환경에 적용한 전략적 사고로, 단순한 추격이 아닌 차별화된 경쟁력을 통한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한다.


AI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과 한국의 기회

이광형 총장은 AI가 모든 산업의 생산성을 결정짓는 기반 기술이라고 규정하며, 한국이 세계 4대 AI 포털 보유국이자 글로벌 반도체 강국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AI 전략을 구축할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 시대의 계산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전통적인 덧셈과 뺄셈 중심의 단순 계산에서 텍스트와 매트릭스 병렬 계산, 그리고 멀티모달 인지 계산으로의 전환은 반도체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운영체제까지 전 과정의 AI 맞춤형 변화를 요구한다. 이는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기술력을 AI 시대에 맞게 재구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풀스택 접근법과 온디바이스 AI 전략

총장이 강조한 "AI 반도체 전략을 반도체만 보고 짜면 실패한다"는 지적은 현재 많은 AI 전략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낸다. AI 모델부터 계산 프로세서, 메모리, 패키징,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풀스택 전 계층을 설계하고 관리할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 최적화가 아닌 시스템 전체의 통합적 최적화를 의미한다.

또한 중앙집중형 AI 인프라에서 개인화된 온디바이스 AI로의 전환에 대한 예측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의 거대 데이터센터 기반 AI 서비스에서 개인 기기 내에서 학습하고 실행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로의 변화는 절전형 AI 칩 설계와 메모리 기술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GPU 자원 배치에 대한 구체적 제안도 실용적이다. GPU를 단일 시설에 집중하여 전력과 열처리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발전소 인근이나 강가, 바닷가 등 전력 공급이 용이한 입지를 활용하며, 공공기관이 주도하여 데이터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데이터 전략과 아시아적 특성의 활용

데이터 확보 전략에서 총장이 제시한 방향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맞추면서 건강, 제조, 국방, 문화 등 아시아적 특성을 반영한 대규모 데이터셋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AI 모델과 차별화될 수 있는 핵심 요소로,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독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다.


산업 전략과 글로벌 협력 체계

AI 산업 전략으로는 대표 AGI 기업 육성, 산업 특화모델 집중 지원, 온디바이스 AI 개발 장려가 제시되었다. 과거 정보화촉진기금과 같은 AI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촉진을 위한 금융 지원 체계의 재설계와 동남아시아, 아랍권과의 협력을 통한 글로벌 시장 확장도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특히 한국의 플랫폼 경쟁력과 반도체 기술을 결합하여 동남아시아와 아랍권과 전략적 동맹을 맺고,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는 AI 글로벌 시장 구도를 깨야 한다는 제안은 천하삼분지계의 핵심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구체적 방안이다.


연합체 구성과 인재 양성 전략

총장이 특히 강조한 '연합체 구상'은 현재 개별 기관 중심의 R&D 체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 접근법이다. AI 인재를 현재의 두 배로 양성하고 연구대학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네트워크형 연구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수학 영재교육 모델을 벤치마크하여 다양한 기준으로 AI 영재를 체계적으로 선발하고 지원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러한 연합체 구성은 출연연과 대학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개별 기관의 한계를 넘어선 생태계 전체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전략이다.


AI 주권과 기초모델의 중요성

AI 주권 확보의 핵심으로 기초모델 개발이 강조된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을 위해 맞춤형 국방 AI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현실적 인식 하에, 국방, 교육, 산업 등 각 분야 특화모델을 위해서라도 독자적인 기초모델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교육 AI에 대한 우려는 매우 현실적이다. "아이들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배우도록 하는 건 AI 교과서와 AI 선생님을 우리가 만들어야 가능하다"는 지적은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전략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교육 AI를 외국 기업에 맡기면 역사관이 왜곡된 채 학습하게 될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AI 주권의 중요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국가 인프라 투자와 출연연의 역할

데이터센터 구축과 GPU 자원 확보 등 국가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과거 초고속통신망 구축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투자를 넘어 국가 차원의 장기적 전략 수립과 실행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주목할 만하다. "AI를 전 산업 분야 연구에 접목해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출연연이 AI 혁신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출연연의 역할을 단순한 연구 수행기관에서 혁신 생태계의 중심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결론과 전망

이광형 총장의 'AI 천하삼분지계' 전략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에서 독자적인 제3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추격이 아닌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주도권 확보 전략이다.

핵심은 한국의 고유한 강점인 반도체 기술력, 아시아적 특성, 그리고 협력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학계, 출연연이 하나가 되어 장기적 비전을 공유하고,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실행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천하삼분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갈량의 지혜만으로는 부족했다. 유비의 인덕과 관우, 장비의 무력이 모두 필요했던 것처럼, 한국의 AI 천하삼분지계도 모든 역량의 결집이 필요한 시점이다. AI 시대의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이러한 전략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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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25년 7월 7일 KAIST에서 개최된 '2025년도 제1회 과학기술정책포럼'에서 이광형 KAIST 총장의 기조발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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