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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원을 건 대한민국의 AI 도박

"대한민국이 AI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


"AI로 대표되는 첨단과학기술의 거대한 물결이 산업과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취임사가 울려 퍼지던 그날, 나는 문득 20년 전 IT 강국을 외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우리는 '세계 최고'를 꿈꿨고, 실제로 많은 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규모도, 속도도, 그리고 정부의 의지도.


모든 것을 AI에 거는 나라


이재명 대통령이 AI에 '올인'을 선언했다. 100조원이라는 숫자가 던져졌고, AI수석이 신설되었으며, 장관들의 입에서는 연일 AI가 쏟아져 나온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이 대통령실 AI미래기획 수석에, 구윤철 'AI 전도사'가 경제부총리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이런 인사를 보며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이번 정부는 정말로 AI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믿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들려오는 한숨소리


국정기획위원회 토론회에서 이한주 위원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씁쓸했다.


"전남대는 인공지능 특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광주에 머물지 않고 전부 다 서울이나 외국으로 간다."


AI 특화 대학의 학생들조차 지역을 떠나는 현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100조원을 쏟아부어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인재들이 모이지 않는 곳에 첨단 기술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그리는 미래 지도


한국인공지능협회 김현철 회장은 말했다.


"현재의 GPU는 물론, 신경망처리장치 등 미래 AI 반도체 기반의 국가 전략 컴퓨팅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의 말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GPU 대부분이 외국산이라는 현실, 그리고 언제든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 AI 주권을 확보하려면 우리만의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강대 김태훈 교수의 제언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한국어뿐 아니라 지역·세대별 문화적 맥락을 포함한 다층적 데이터 세트를 공개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저작권을 준수하는 안전한 데이터 샌드박스를 조성해야 한다."


ChatGPT가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정말 우리의 정서를 이해할까? 우리만의 AI를 만들려면 우리만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것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문화와 감정이 담긴 살아있는 데이터가.


100조원의 무게


김민석 국무총리는 자신 있게 말했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


하지만 구윤철 부총리 후보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100조원의 실체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재정만이 아니고 민간 자본까지 다 포함된 것"이라는 그의 말은, 결국 정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민간이 과연 따라올까? 정부의 의지만으로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AI 전략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 미래의 희망


20년 전 우리는 IT 강국이 되겠다고 했고, 실제로 많은 것을 이뤘다. 삼성의 반도체, LG의 디스플레이, 네이버의 검색 엔진까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도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고, 플랫폼 경쟁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에 밀렸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AI라는 새로운 기회 앞에서 말이다.


에이전트 AI가 그리는 세상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이 있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AI를 넘어, 실제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말이다.


상상해보자. 내가 "다음 주 부산 출장 일정을 잡아줘"라고 말하면, AI가 알아서 항공편을 예약하고 호텔을 잡고 렌터카까지 준비해주는 세상. 공장에서는 AI 로봇이 사람과 함께 일하며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이는 세상.


이런 미래가 10년 후에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미래를 누가 주도하느냐다.


지금 뿌려야 할 씨앗들


김현철 회장이 강조한 "미래 기술의 씨앗을 지금 뿌려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토양이 있어야 하고, 꾸준한 관리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성과에 급급해하다가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AI를 향해


김태훈 교수가 제시한 비전이 인상적이다. "값비싼 AI가 아닌 누구나 쓸 수 있는 AI"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AI는 여전히 소수의 전유물이다. 거대한 컴퓨팅 파워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AI는 달라야 한다. 작은 회사의 사장도, 동네 병원의 의사도, 시골 학교의 선생님도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AI의 혜택이 사회 전반에 고르게 퍼질 수 있고, 진정한 의미에서 AI 강국이 될 수 있다.


마주해야 할 현실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먼저 인재 문제다. AI 전문가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고, 우리나라의 인재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 광주의 전남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다음은 규제 문제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개인정보보호, 저작권, 윤리 등의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혁신을 막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보장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성 문제다. 100조원을 한 번에 쓰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에 걸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정책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택할 미래


결국 이번 AI 국정전략의 성공 여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며, 국민들이 AI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한다.


20년 전 우리가 IT 강국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듯이, 이번에도 AI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100조원을 건 이 도박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대한민국 AI의 새로운 장이 막 열렸다.


김현철 | AI R&D 전략플래너
기계공학 박사, PMP & Agile 전문가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평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R&D 혁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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