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이 그리는 혁신의 청사진
지난 17일, 76년생 젊은 리더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했다. 배경훈 신임 장관. 민간 출신 첫 과기부 장관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그가 첫 만남에서 던진 한 마디였다.
"바이오 분야의 연구소장급 AI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취임 첫날 마련된 타운홀 미팅. 격의없는 대화를 원한다며 직원들과 마주 앉은 배 장관에게 한 직원이 물었다. "AI를 어디서부터 적용해야 할까요?"
그의 답변은 의외로 소박했다. "굉장히 작은 일부터 우리가 활용을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바이오뿐만 아니라 화학, 기초과학 등 각 분야에서 연구소장급 AI를 만들어 에이전트 AI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구소장급 AI. 단순히 문서를 정리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보조 도구가 아니다. 연구원들과 함께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진짜 연구 파트너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미 추론형 AI 기반으로 암 정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 뛰어든 상황에서, 우리도 이제 진짜 게임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국내 우수 인재들이 마음껏,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임기 중 반드시 만들겠다."
인재 유입 방향을 묻는 질문에 배 장관이 내놓은 답변이다. 높은 연봉으로 인재를 끌어모으는 것은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갖겠지만 잠시 머무르다 떠나거나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그가 강조한 것은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실험장비, AI 컴퓨팅 인프라,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 "인재 한 명이 들어오면 그 한 명이 여러 인재를 이끌어 내면서 서로 시너지를 낸다"며 선순환 생태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과기정통부는 국가 AI컴퓨팅 센터와 슈퍼컴 6호기 구축을 통해 세계 수준의 AI 인프라를 조속히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AI 파운데이션 모델 확보와 국가데이터 통합 플랫폼 구축도 추진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다.
배 장관이 제시한 또 다른 변화는 제도 혁신이었다. R&D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 폐지 완수와 폐지된 풀뿌리형 기본연구의 복원. 그동안 현장에서 지적되어온 제도적 장벽들을 과감히 해체하겠다는 의지였다.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적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과학기술 정책 결정 과정 전반에 민간 전문가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관료적 경직성을 깨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내부 리더들과 결정했던 사항을 AI로 상의하면서 뒤집었던 경험도 있다."
AI 활용을 묻는 질문에 배 장관이 털어놓은 솔직한 경험담이다. 그는 매일 AI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론이 아닌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가 진단하는 현재 상황도 냉정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추론형 AI 모델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솔직한 인정은 절망이 아닌 출발점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빠른 AI 도입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도 전문 분야에서 추론형 기반의 데이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민간과 공직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
조직 문화에 대한 질문에 배 장관이 내놓은 답변이다.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고 원활한 소통을 위한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권위와 위계가 아닌 존중과 협력 속에서 일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였다.
실제로 그는 취임 3주 동안 과기정통부 직원들이 보고를 위해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공간 이동을 줄이고 온라인 소통을 활성화하자고 제안했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혁신이었다.
배경훈 장관이 그리는 미래는 명확하다.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튼튼한 생태계, R&D 투자가 성장으로 선순환되는 혁신생태계, 그리고 AI·과학기술 인재강국의 실현.
그 중심에는 연구소장급 AI가 있다. 연구원들의 진짜 파트너가 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가는 AI.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R&D 생태계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제도 많다. 추론형 AI 기술의 확보, 각 분야별 전문 데이터의 구축, 연구자들의 AI 리터러시 향상 등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그의 철학처럼,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76년생 젊은 장관이 여는 새로운 시대. 연구소장급 AI와 함께하는 R&D 혁신의 여정이 지금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