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이혼하는 시대가 온다
메리츠증권 김준성 연구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자동차라고 불러왔던 건 사실 수동차예요. 진짜 자동차는 이제 시작이에요."
처음엔 말장난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맞다.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를 밟고, 방향지시등을 켜는 모든 행위가 내 노동력을 요구한다. 영어로 자동차를 '카(Car)'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타온 건 사실 '수동카'인 셈이다.
오늘 아침을 떠올려보자. 눈을 뜨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고, 문을 나서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끝없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김준성 연구원은 이 모든 행위의 기반이 '이동 능력'이라고 말한다.
"제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거죠. 이동 능력이 없다면 다른 어떤 노동도 불가능해요."
그의 말을 들으니, 로봇택시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하려면, 가장 먼저 이동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제자리에 앉아 있는 AI로는 물리적 세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로봇택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철학이 흥미롭다.
웨이모는 '인플레이션 기술 혁명'을 추구한다. 더 많은 돈을 내고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것.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같은 개념이다. 라이다와 각종 센서를 달고,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노래도 부르고, 면접 연습도 할 수 있다.
테슬라는 정반대다. '디플레이션 기술 소비'를 지향한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것. 노동을 제거해서 생산성을 혁명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거다.
김준성 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니 테슬라의 접근이 더 파괴적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AI로 대체해서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소비자도 같은 서비스를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게임이 완전히 바뀌는 거다.
숫자로 보니 더 실감난다.
현재 택시를 타면 km당 평균 2천 원이다. 자동차를 15만km 타려면 택시비로 3억 원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3천만 원짜리 차를 사서 직접 운전한다. 내 노동력을 '공짜'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로봇택시가 보편화되면? 3억 원이었던 이용료가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차를 살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거다.
더 놀라운 건 테슬라 로봇택시의 수익 구조다. 하루에 20번 정도 태우면 16만 원의 매출이 나온다. 연간 6천만 원. 그런데 비용은? 보험료는 사고가 거의 안 나니까 0에 가깝고, 유지보수는 로봇이 알아서 하고, 충전도 무인으로 한다. 심지어 테슬라는 전력거래 사업까지 한다.
마진이 50% 이상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100만 대를 운영하면 10조 원 단위의 이익이 가능하다고?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
김준성 연구원이 중국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국 자동차 수출이 2020년 100만 대에서 2024년 641만 대로 폭증했다고 한다. 6배가 늘었다.
"중국에 가보세요. 도시 풍경이 우리보다 선진화되어 있어요. 특히 1-2선 도시는 이미 한국보다 자동차 평균 구매가가 높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중국이 3천만 원대 스마트카를 출시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차들을. 처음엔 80% 자율주행에서 시작해 95%까지 올라가는.
BYD 같은 기존 전기차 업체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스마트카에 밀려 '도망가듯' 해외 수출을 늘리고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김준성 연구원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급해요. 로봇택시가 이미 나왔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직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로봇택시는 없어요. 인플루언서들만 타볼 수 있는 수준이죠."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42dot이 2028년에 뭔가를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는 거다. 현재 주가도 PER 3-4배로 비관론이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이동 시장의 규모를 생각해보라.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이동 비용이 20%를 차지한다. 주거비 다음으로 큰 비중이다. 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거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준성 연구원은 이걸 '아킬레스건 때리기'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에서 자동차가 60-70%를 차지해요. 미국이 이걸 알고 계속 흔드는 거죠. 사탕이 떨어질 때까지."
트럼프 1기 때도 그랬다고 한다. 자동차 관세로 위협하고,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면 치하하고, 돌아가서는 또다시 위협하고. 벤딩머신처럼 치면 칠 때마다 사탕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다.
자동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협상 카드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카드 밑에 우리 자동차 산업이 깔려 있다.
차와 이혼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농담 같지만 진짜다. 로봇택시가 경제적이고 편리하고 재미있다면, 누가 차를 사겠는가?
차 안에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화상통화로 데이트도 할 수 있다. 운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경제성, 편의성, 재미가 삼박자를 갖춘 대상을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김준성 연구원의 마지막 말이 계속 생각난다.
“마음이 급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스마트카 시장을 남들이 다 가져가면 안 되니까요.”
변화의 물결이 이미 시작됐다. 수동차에서 자동차로, 소유에서 공유로, 노동에서 자동화로. 이 변화를 읽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그 변곡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