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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학자들이 '자비스'를 손에 넣었다

아이언맨의 AI 비서가 현실이 되는 순간, 과학의 속도가 바뀌었다



20분 만에 끝낸 일주일짜리 일


지난 7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 현장. 한 연구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양자점 나노입자의 광학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최신 연구 동향을 정리해줘."


평소라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문헌 조사 작업이었습니다. 수백 개의 논문을 찾아 읽고, 관련 실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고, 연구 방법론을 검토하는 일. 그런데 20분 후, 화면에는 정리된 보고서가 나타났습니다. 1억 7천만 편의 논문에서 추린 핵심 내용과 최적의 실험 방법, 심지어 필요한 장비까지 자동으로 매칭된 완벽한 연구 가이드였습니다.


이것이 중국과학원이 공개한 '반석(磐石) 과학기초대모델'의 첫 시연 장면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드디어 과학자마다 자비스를 갖게 됐다."


76년 전, 한 나라의 꿈이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중국이 세워진 지 한 달 만에,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과학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과학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였죠.


그때 해외에 있던 2천여 명의 중국 과학자들에게 조국으로 돌아오라는 편지가 날아갔습니다. 놀랍게도 이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돌아왔고, 그 중 200여 명이 갓 설립된 중국과학원에 합류했습니다. 조국에 대한 과학자들의 헌신, 그것이 오늘날 중국 과학굴기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과학 실험실


현재 중국과학원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국에 12개 분원, 114개 연구소, 7만여 명의 연구진. 연간 예산만 17조원에 달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R&D 예산의 60% 수준을 단일 기관이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베이징에서 시작해 상하이, 광저우, 청두까지. 중국 전역에 뻗어있는 이 거대한 과학 네트워크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입니다. 허페이에서는 양자컴퓨터와 핵융합 실험이, 하이난에서는 심해 탐사가, 티베트 고원에서는 우주선 관측이 동시에 이뤄집니다.


반석 모델, 과학의 새로운 언어


반석 모델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빠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존의 AI들이 하나의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었다면, 반석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 천문학, 지구과학을 모두 아우릅니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모든 분야를 넘나드는 르네상스형 AI인 셈이죠.


더 놀라운 건 300개가 넘는 과학 도구들을 스스로 조합해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자가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고 싶다"고 하면, 필요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연결하고, 실험 순서까지 짜줍니다. 진짜 연구 조수가 따로 없는 거죠.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24년 초만 해도 미국 AI 모델이 중국보다 9% 정도 앞서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그 차이가 1.7%까지 줄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중국이 보유한 AI 모델의 개수입니다. 전 세계 AI 모델의 40%를 중국이 갖고 있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이제 미국의 독주 체제는 끝났습니다. 구글의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동안, 중국은 모든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 AI를 만들어낸 겁니다. 접근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다행히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언어모델을 만든 나라입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를 시작으로 LG의 엑사원, 삼성의 가우스까지. 총 14개의 초거대 AI 모델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국의 반석 모델 같은 과학 전용 AI는 아직 우리에게 없습니다. NTIS(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나 AI-Hub 같은 인프라는 있지만, 진짜 연구를 도와주는 지능형 시스템까지는 아직 멀었죠.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서


우리나라 R&D의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 사일로'입니다. 각 부처, 각 기관이 따로 놀고 있어요. 과기정통부는 과기정통부대로, 산업부는 산업부대로. 심지어 같은 부처 산하 기관들끼리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이 반석 모델을 통해 해결하려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연구 생태계의 폐쇄성"이라고 그들이 표현한 것 말이죠. 300개의 도구를 자유자재로 연결해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건, 단순히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조직 운영의 혁신이기도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한국형 자비스


만약 우리에게도 한국형 반석 모델이 있다면 어떨까요?


KAIST의 연구자가 새로운 반도체 소재에 대해 질문하면, KIST의 나노기술 데이터베이스와 ETRI의 통신 기술 정보, 심지어 포항공대의 철강 기술까지 연결해서 최적의 답을 찾아줍니다. 부산대의 해양 연구와 제주대의 기후 데이터를 조합해서 새로운 환경 솔루션을 제안하기도 하고요.


지금 각 기관이 따로 보유하고 있는 연구 장비들도 AI가 알아서 스케줄링해줍니다. "이 실험을 하려면 대전의 A 장비와 포항의 B 장비를 이 순서로 써야 해요"라고 말이죠.


시간과의 경주


중국과학원의 원장은 최근 미국국립과학원 원장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과학기술 발전은 전 인류의 공동 목표"라며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놨죠.


하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기술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뒤처지는 나라는 그만큼 기회를 잃게 됩니다. 중국이 99%의 시간 단축을 실현하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을 순 없겠죠.


변화는 지금부터


좋은 소식은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세계 3위의 AI 기술력, 우수한 연구 인력, 탄탄한 ICT 인프라. 이 모든 것을 잘 연결하기만 하면 됩니다.


과기정통부에서는 이미 'AI 기반 공공 R&D 가치창출 시스템'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아직은 기술사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를 확장해서 기초과학 연구까지 아우르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속도입니다. 중국이 이미 한 발 앞서 나간 지금, 우리도 서둘러야 합니다.


에필로그: 과학자의 꿈


마블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가 자비스와 대화하며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본 적 있나요?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말이죠.


과학자들이 꿈꿔온 것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깊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 그 꿈이 AI와 만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중국의 반석 모델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AI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심지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요? 아니면 함께 그 미래를 만들어갈 건가요?


답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자료

이석봉, "中 과학자들 '자비스' AI 무장···과학전용 AI 모델 공개", 헬로디디, 2025.08.12

"중국 과학굴기 뿌리 시리즈", 헬로디디, 2025.05

"'초거대 AI 모델' 3파전…한국, 미국·중국 이어 3위", ZDNet Korea, 2025.02.17

"중국 LLM 1500개 넘어...전 세계 모델 40% 차지", AI타임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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