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배우는 미래 R&D 전략
새벽 5시,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어딘가. 키예프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하 벙커에서 한 젊은 장교가 태블릿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전장 상황이 펼쳐진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지역에 적군 전차 부대가 나타났다는 신호가 깜빡인다.
장교는 서둘러 몇 번의 터치를 한다. 스타링크 위성을 통해 전송된 정보가 AI 시스템에서 분석되고, 최적의 대응 방안이 계산된다. 불과 3분 후, 하늘에서 날아온 작은 드론이 적군 전차를 정확히 타격한다. 전체 과정에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2025년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단과학기술전'의 실상이다.
4년 전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우리가 알던 전쟁의 모든 상식을 뒤바꿔놓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시간'이다.
군사 이론에는 OODA 루프라는 개념이 있다. Observe(관찰)-Orient(상황판단)-Decide(결정)-Act(행동)의 순환 과정이다. 과거 전쟁에서 이 과정은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몇 분, 때로는 몇 초 단위로 단축시켰다.
비밀은 바로 '연결'에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제공하는 스타링크 위성 네트워크가 우크라이나 전 지역을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으로 연결했다. 최전선의 드론이 포착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후방의 AI 분석 시스템으로 전송되고, 분석 결과는 즉시 현장의 무기 시스템에 전달된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GIS-Arta'라는 전장관리 시스템은 마치 게임의 미니맵처럼 실시간으로 전장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접목되어 복잡한 전장 데이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적 정보로 변환한다.
이는 마치 페더급 복싱 선수가 빠른 발놀림과 연타로 헤비급 선수를 압도하는 것과 같다. 절대적인 힘에서는 밀릴지 모르지만, 속도로 승부를 뒤집는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공간'이다. 전쟁의 무대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가 사용하는 Shahed-136 드론은 2,500km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이는 서울에서 발사해 필리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13여단은 아예 로봇 부대로 개편되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안전한 후방에서 최전선의 로봇들을 조종한다.
더 놀라운 것은 민간 기업들의 참여다. 스페이스X는 통신망을, 막사 테크놀로지는 위성사진을, 호크아이 360은 GPS 교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전쟁의 주체가 더 이상 군대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민간 기업들이 우주에서 사이버공간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지상, 해상, 공중, 사이버, 전자기 스펙트럼, 우주. 이제 전쟁은 이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는 면적으로는 한국의 6배, 인구로는 그와 비슷한 나라다. 하지만 세계 2위 군사대국이라는 러시아를 상대로 4년간 버텨내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혁신'에 있었다.
기존의 무기체계에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민간의 상용기술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며,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 이것이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사용한 기술의 상당 부분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던 상용기술이라는 것이다. 스타링크는 원래 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개발된 것이고, 사용된 AI 기술들도 대부분 오픈소스이거나 상용 솔루션들이다.
결국 핵심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통해 드론, 미사일, 방공체계 등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병력을 파병해 실전 경험까지 쌓고 있다.
북한군이 러시아로부터 배워오는 것은 단순한 무기 기술이 아니다. 바로 이 '첨단과학기술전'의 노하우다. 시간을 압축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새로운 전쟁의 방법론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평가를 담당하는 AI R&D 전략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우리의 연구개발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OODA 루프를 몇 분으로 단축했듯이, 우리도 연구 기획부터 성과 도출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연구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자동으로 연구 기획안을 생성하며, 진행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융복합 연구를 가속화해야 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정보학의 경계를 허물고,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실시간으로 연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민간 기술과 군사 기술을 융합했듯이, 우리도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창조적으로 조합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민간 기업들의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국제 공동연구와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며칠 전, 한 연구진과 미팅을 했다. 그들이 개발 중인 AI 기반 드론 제어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하지만 연구 기간은 5년, 예산은 수백억 원이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들려주며 물었다. "혹시 이 연구를 1년 안에, 예산의 절반으로 완성할 방법은 없을까요?"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러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개발된 상용 AI 모델을 활용하고, 해외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협력하며, 국내 스타트업들의 민첩한 개발 방식을 도입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보여준 혁신의 핵심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속도를 높이고, 경계를 허무는 것.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느리고 경직된 연구개발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혁신적 접근법을 받아들일 것인가.
북한이 러시아와 함께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를 선택한다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단순한 전쟁의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다. 첨단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우리는 그 변화의 파도를 타야 한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그리고 준비의 핵심은 바로 혁신이다.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것처럼, 작은 나라도 올바른 전략과 기술이 있다면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참고 조상근, "첨단과학기술은 전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KOFST News,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2025년 8월 12일 (월간 《과학과기술》 2025년 8월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