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과학기술 복원 프로젝트
2025년 8월 22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 그 자리에서 발표된 숫자 하나가 한국 과학기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35조 3,000억원.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국가연구개발 예산안의 총액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선다. 지난 몇 년간 위축되어온 한국의 연구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담은 선언문과도 같다. 전년 대비 19.3% 증가한 이 예산은 역대 최고 규모로, '진짜 성장을 위한 진짜 R&D'라는 구호 아래 한국 과학기술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번 예산안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 과학기술계가 겪어온 시련을 돌아봐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기초과학의 붕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젊은 박사들은 포스닥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워졌고, 기존 연구자들은 과제 수주에 매달려야 했다. 특히 PBS(Project Based System) 제도는 연구자들을 끝없는 경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한 40대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제를 따내지 못하면 연구소에서 월급을 받을 수 없으니, 연구보다 제안서 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이게 과연 연구자의 삶일까요?"
이런 현실 속에서 발표된 35조원의 예산안은 마치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느냐였다.
정부는 이번 예산을 '기술주도 성장'과 '모두의 성장'이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첫 번째 축은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 축은 모든 연구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과감했다. AI 분야에만 2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범용인공지능부터 피지컬AI까지, 차세대 기술의 '풀스택' 개발을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전략기술 분야에는 무려 8조 5,000억원이 배정되었다. 양자컴퓨팅, 합성생물학 같은 원천기술부터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까지 아우른다.
에너지 분야도 2조 6,000억원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는다. 기후변화 시대에 필수적인 청정에너지 기술과 SMR(소형모듈원자로) 같은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기초연구 생태계 복원이다. 3조 4,000억원이 기초연구에 투입되며, 개인기초 과제 수를 2023년 수준 이상으로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2026년에는 1만 5,311개의 과제를 지원할 예정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폐지되었던 '기본연구'의 부활이다. 전임연구자 2,000개, 비전임연구자 790개의 신규 과제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연구자들의 단기 성과 압박을 줄이기 위해 과제 기간도 대폭 늘렸다. 신진연구자는 1년에서 3년으로, 핵심연구자는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된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 4조원도 의미가 크다. 그동안 연구자들을 옭아맸던 PBS 제도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정부수탁 종료분을 기관 출연금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2026년에만 5,000억원 규모의 전략연구사업을 신설해 재정구조를 바꾼다.
'모두의 성장'이라는 두 번째 축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연구 인프라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지역성장 분야에 1조 1,000억원을 투입해 지역 주도의 자율 R&D를 지원한다. 권역별 예산 배분을 통해 지역의 특성을 살린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에도 3조 4,000억원이라는 큰돈이 배정되었다. 민간투자 연계형, 경쟁보육형 R&D로 검증된 기업 중심의 지원을 강화하고, 대학과 출연연의 기술 사업화를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번 예산안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한 대학 교수는 "이미 붕괴 중인 기초과학 생태계가 이번 예산으로 얼마나 복원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체적으로 약 6만 명으로 추정되는 연구 인력을 고려할 때, 개인 기초과제 수를 3만 개까지 확대해야 명실상부한 기본 연구 체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의 규모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약속들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연구자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과학기술계에 희망을 주었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과학기술을 존중하고 기술이 발전한 나라는 흥했고 기술을 천시한 나라는 망했다"는 그의 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이번 조치를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연구생태계 복원과 국가전략기술 확보를 동시에 이뤄내는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김민수 회장 직무대행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재정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 연구자들의 숨통이 트이고 청년 과학자와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35조 3,000억원. 이 숫자가 단순한 예산 증액에 그칠지, 아니면 한국 과학기술의 르네상스를 여는 씨앗이 될지는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번 예산안이 담고 있는 철학이다. '진짜 성장을 위한 진짜 R&D'라는 슬로건처럼,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 말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이번 예산안이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숫자로 보여준 약속이 현실로 이어지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출처: 홍재화, "이재명 정부 첫 R&D 예산안 35조3000억원 사상최대···'대한민국 새로운 발전의 시금석'", 헬로디디(HelloDD), 2025년 8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