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그려낸 5년간의 청사진을 들여다보며
2025년 여름,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인 순간을 지나고 있다. 헌법 질서를 유린하려 했던 비상계엄이 선언되었고,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정부가 조기에 선출되었다.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이 정부가 내놓은 5개년 계획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정책 나열이 아닌 이 나라에 대한 깊은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다. 마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집을 짓듯, 무너진 국정 체계를 바로 세우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이 정부가 내세운 국가비전이다.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이 문구 뒤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예리한 진단이 숨어 있다.
2025년 평화적 방식으로 계엄을 물리친 '빛의 혁명'을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닌, 국민이 스스로 헌법적 질서를 지켜낸 상징적 순간으로 해석한다. 지능정보사회의 발전과 함께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이제야 진짜 '국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꿈꾸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만이 아니다. 성공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최상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 나라에서, 양적 성장을 넘어선 질적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정치 개혁 의지는 급진적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겠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찰청을 완전히 폐지하고 공소청과 수사청을 신설해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이런 개혁들을 보면 마치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 권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 의문과 함께, 국민 참여를 활성화하는 '국가시민참여위원회' 같은 새로운 참여 민주주의 기구들을 만들겠다고 한다. 선거로만 끝나는 민주주의가 아닌, 일상에서 숨 쉬는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I 3대 강국' 도약이다. GPU 5만장을 조기 확보한다는 계획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GPU보다 10배 이상 많은 규모다.
하지만 단순히 하드웨어만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AI를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정부 서비스부터 일반 국민의 일상까지 AI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회를 그리고 있다. 30대 핵심과제를 통해 공공 부문에 AI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세계 1위 AI 정부' 계획도 흥미롭다.
그리고 10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AI 등 미래 전략 산업과 에너지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과연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이 정도 규모의 투자 없이는 AI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이들의 접근도 흥미롭다. '5극3특' 체제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깨고 5개 광역권(수도권·동남권·충청권·대경권·호남권)별로 특별지자체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해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까지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 논란이 되어온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이번엔 정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리고 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한 공적 주택 110만호 공급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현재 주택 공급 속도를 고려하면 결코 작지 않은 숫자다. 부동산 문제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사회' 구현이라는 개념도 인상적이다. 소득, 주거, 의료, 돌봄, 교육을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사회기본법'까지 만들어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특히 돌봄 분야에서 '살던 곳에서 존엄한 삶'을 보장하겠다는 비전이 인상깊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나이가 들어도 익숙한 곳에서 품격있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에게는 절실한 정책이다.
인구 위기에 대한 대응도 체계적이다. 아동수당 확대, 국민연금 개선,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통해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획들이다. 연간 실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일중독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는 필요한 변화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눈에 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을 추구하면서, '남북기본조약' 체결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경제' 비전이 흥미롭다. 평화경제특구 조성, DMZ 국제 생태평화 협력지구 개발, 개성공단 재개 등을 통해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분단의 상징인 DMZ를 평화와 협력의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상상력이 느껴진다.
동시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임기 내에 전환하고, 방산 4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도 병행한다. 평화를 추구하되 안보도 확실히 하겠다는 균형감각이다.
이 모든 계획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한 꿈일까 하는 것이다. 100조원 펀드, 110만호 주택 공급, 검찰 개혁, 행정수도 완성 등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정치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에서의 합의, 기존 기득권 세력의 저항, 국제 정세의 변화 등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 5년이라는 임기도 이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결코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정도의 야심찬 비전 없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AI 혁명, 기후위기,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심화 등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는 점진적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모든 계획들의 성공 여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안 되고, 국민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결국 국민이 주인 역할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1.4만여 건의 국민제안을 반영해서 만들었다는 이 계획이, 단순한 정치적 공약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진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계엄과 항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으며 출범한 이 정부가, 정말로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답은 앞으로 5년간의 여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회의적이고 때로는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 실험의 당사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2025년 여름, 한 정부가 내놓은 청사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