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현장의 생존자 편향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요즘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많아졌다.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잡아주는 방식을 관찰하다 보니, 테슬라와 현대차의 철학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테슬라는 핸들을 확 돌려버린다. 운전자가 "이거 좀 빡센데?"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반면 현대차는 조심스럽다. 운전자가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캔슬된다. 마치 "이건 어디까지나 어시스트입니다"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차이는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슬라가 FSD(Full Self-Driving) 개발에 뛰어들 때, 많은 전문가들이 "사기다",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당시 수준으로는 일반인이 사용하면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계속해서 "내년이면 된다", "6개월 후면 된다"며 무모하게 도전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손 대지 않고 1,000-2,000km를 주행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SpaceX의 로켓 개발 철학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13개의 로켓을 준비하고 "13번의 시험발사를 하겠다"고 계획했다. 첫 번째 로켓이 폭발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멋있게 추락했다", "에픽 폭발이었다"며 즐겼다. 실패할 때마다 "오늘도 하나 더 배웠구나"라며 기뻐했다. 하나하나가 실패가 아니라 배움을 하나 더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나로호 첫 번째 발사가 실패했을 때까지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실패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매국노" 소리까지 들으며 엄청난 사회적 압박에 시달렸다. "우리 세금이 하늘로 뻥뻥 터져나간다"는 조롱 속에서 로켓 하나 쏘아 올리는 것이 목숨을 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단 하나의 로켓도 손해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SpaceX는 13개의 로켓 중 10개가 실패하더라도 나머지 3개가 성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로켓을 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그것을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사이의 차이 말이다.
여기서 우리 R&D 생태계의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연구자들에게 실패 사례는 기록이 없거나 빈약한 반면, 성공 사례는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본의 아니게 성공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성공한 프로젝트는 어떤 기록들이 남는가? 상세한 연구보고서와 논문이 작성되고, 특허 출원 및 등록 문서가 만들어진다. 언론 보도와 수상 이력이 남고, 연구책임자의 성공담과 노하우가 공유된다. 후속 연구를 위한 상세한 방법론이 기술되고, 다른 연구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축적된다.
그럼 실패한 프로젝트는 어떨까? 대부분 형식적인 간단한 연구종료보고서만 남는다. "예상보다 어려웠다"는 식의 추상적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구체적인 실패 원인 분석은 부재하다. 다음 연구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상세한 시행착오 과정은 누락되고, 어떤 접근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남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는 단순히 기록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연구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연구자 개인 차원에서 보면, 실패 프로젝트 참여 이력이 향후 연구과제 선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패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했을 때 "능력 부족"으로 평가받을 위험성도 존재한다. 연구책임자의 입장에서는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걱정하게 된다.
기관 차원에서는 또 다른 압박이 있다. 기관 평가에서 성공률이 핵심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에, 실패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분석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 대외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실패 사례를 공개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R&D 성과평가가 여전히 정량적 성공 지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창의적 실패"에 대한 개념적 동의는 있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실패 사례 분석 및 공유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아무도 실패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전쟁에서 돌아온 전투기의 총탄 자국만 보고 방어를 강화하려다가, 정작 격추된 전투기들이 어디를 맞았는지는 모르는 상황과 같다. 우리는 성공한 사례들만 보고 그것을 일반화하려 하지만, 정작 실패한 사례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를 단순한 손실이 아닌 다음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실패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각 연구 분야별로 체계적인 실패 사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실패했다"는 결과만 기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초기 연구 가설과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방법론과 실험 설계를 사용했는지, 각 단계별 중간 결과와 의사결정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실패 시점의 구체적 원인 분석과 대안적 접근 방법에 대한 고려사항, 그리고 후속 연구자를 위한 권고사항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프리모템(Pre-mortem)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프로젝트 시작 전에 "이 연구가 실패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를 미리 분석하는 방법이다. 단순한 리스크 분석을 넘어서, 과거 유사 연구들의 실패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 설계를 개선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예측 가능한 실패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완화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좋은 실패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실패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무모하게 진행한 실패와, 체계적인 계획 하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힌 실패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학계와 산업계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명확한 연구 가설과 체계적인 방법론을 갖추고, 충분한 사전 문헌 조사와 예비 실험을 진행했으며, 실패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분석하여 후속 연구를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남긴 경우라면 이를 "좋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좋은 실패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실패 사례 공유를 통해 연구 커뮤니티에 기여한 점을 적극 평가해야 한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런 실패 편향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 패턴 분석과 예측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과거 실패 사례들의 공통 패턴을 분석하고, 연구 설계 단계에서 잠재적 실패 요인을 예측하며, 유사 연구 분야의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한 조기 경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지식 구조화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실패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실패 원인의 다차원적 분류와 연관관계를 분석하며,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검색 가능한 지식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연구자들이 필요한 순간에 관련된 실패 사례와 교훈을 즉시 찾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시뮬레이션과 가상 실험 영역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실제 실험 전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검증하고, 과거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연구 설계를 최적화하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더 많은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
테슬라가 7년 동안 무모하게 도전한 결과 지금의 자율주행 기술을 얻었듯이, 우리도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대차도 이제 목표를 완전 자율주행으로 바꿨다고 한다. 테슬라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한국인들의 "내가 지는 꼴을 못 본다"는 집념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목표를 정했을 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속도에서는 현대차를 능가하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거의 실패들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음 성공을 위한 값진 자산이다. 그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패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다. 그것이 갖춰질 때 비로소 우리도 SpaceX처럼, 테슬라처럼 과감하게 도전하고 빠르게 학습하며 궁극적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