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민영익이 본 철도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1883년, 한 젊은이가 가마를 타고 며칠을 걸어 제물포에 도착했다. 23세의 민영익. 그는 조선 최초의 보빙사를 이끌고 미국으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가 본 것은 충격이었다. 미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가마를 타고 며칠을 걸어야 했던 그에게 철도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그에게 말했다.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고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를 횡단하고 인도를 건너 돌아가라."


민영익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한 그는 귀국 후 오히려 더욱 폐쇄적으로 변했다. 왜일까?


무서워서였다


많은 학자들은 민영익이 몰라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문을 닫았다고 본다. 개방하면 자신이 가진 권력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북한 지도부가 외부 세계를 알면서도 문을 열지 않는 것처럼.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폰? 화면만 크고 뭐가 되겠냐? 핸드폰은 전화하면 되는 거 아니야?" 당시 국내 통신업계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이폰을 쓸 수 있게 된 건 3년 후인 2010년이었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 사용 시간 중 통화에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당시의 인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25년,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현재 미국 텍사스를 중심으로 테슬라의 로보택시가 실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 안 보이는데?", "그거 다 주가에 반영됐어"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핵심은 인식의 전환이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수익 창출 자산'으로 바뀌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과거 꼬마빌딩으로 임대수익을 올렸듯이, 로보택시는 새로운 형태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국가 R&D, 35조원의 변화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우리 국가 R&D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혁신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소식이 있다. 이재명 정부가 2026년 R&D 예산을 35.3조원으로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올해(29.6조원)보다 19.3%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윤석열 정부 때 26.5조원까지 깎인 것을 생각하면 극적인 변화다.


하지만 예산이 늘어나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연구실에 갇혀 논문 편수, 특허 출원 수에만 매몰되어 있는 구조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실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더 큰 문제는 부처간 협력이 안 된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는 기술 개발만, 산업부는 상용화만, 국토부는 규제만 담당한다. 각자 자기 KPI에만 매몰되어 있다.


35.3조원이라는 역사상 최대 예산을 받고도 여전히 칸막이 안에서 따로 논다면, 민영익이 철도를 보고도 문을 닫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기정통부도 이 문제를 인정했다. "출연연구기관 사이의 칸막이를 파괴하여 연구자가 소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으니까.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협력이 얼마나 안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OECD도 2023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혹독하게 평가했다. "총괄적인 혁신 정책을 개발하기보다는 부처 간 예산을 재조정해 새 우선순위에 대응하는 식"이라고.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을 아우를 범정부 차원의 로드맵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첫째, 연구실에서 현장으로 나와야 한다. "기술을 만들면 시장이 알아서 받아들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연구 초기부터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 진입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둘째, 부처간 칸막이를 넘어서야 한다. 로보택시 같은 융복합 기술은 한 부처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문제 해결' 중심의 통합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셋째, 사업 시작 전 구체적 합의가 전부다.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같은 추상적 목표로는 안 된다. "3년 후 특정 도시에서 로보택시 상용 서비스 런칭"처럼 구체적이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책임지는지, 실패 시 책임은 어떻게 분담할지까지 사전에 명문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민영익 시대의 조선 백성들과 우리는 다르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알았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로보택시가 돌아다니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있다.


국가 R&D도 마찬가지다. 연구실에 갇혀 있지 말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처간 협력을 통해 통합적으로 접근하며, 사업 시작 전부터 구체적으로 합의한다면 진정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민영익이 철도를 보고도 문을 닫았던 것, 우리가 아이폰 혁명을 늦게 받아들인 것처럼, 지금 우리 R&D 정책도 변화의 기회 앞에서 문을 닫고 있는 건 아닐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R&D 정책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지금이 그 시작점이다.


출처: YouTube - 민영익, 아이폰, 로보택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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