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연구실 동료가 되는 날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월요일 새벽 6시, 새벽수영을 마치고 수영장 벤치에서 서울경제 백상논단에 올라온 이상엽 KAIST 교수님의 칼럼을 읽었다. 'AI 공동연구자와의 협업이 필수인 시대'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20년 넘게 R&D 현장에서 일해온 내게도 지금의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느껴진다.


실험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혁명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며칠 전 방문했던 한 바이오 연구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본 풍경은 내가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연구원들이 밤새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대신, AI가 24시간 돌아가며 수천 개의 분자 구조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그 결과를 검토하며 다음 실험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AI 공동연구자는 단순히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 과학자가 아니다"라는 교수님의 표현이 정확히 그 순간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며 연구의 속도와 정확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가설 하나 세우는데 6개월이었던 시절


내가 박사과정 시절을 회상해보면, 연구 주제를 정하고 첫 가설을 세우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 도서관을 오가며 논문을 찾고, 복사하고, 밑줄 그으며 읽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놓친 중요한 논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은 다르다. 교수님이 언급한 '검색증강생성기술'을 활용하면 논문과 특허, 실험 결과들로부터 근거 기반의 가설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일을 AI가 함께한다. 물론 이것이 사람이 일일이 하게 되면 효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연구 경쟁력 자체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교수님의 지적이 뼈아프게 와닿는다.


실험실이 24시간 돌아가는 세상


더 놀라운 건 자율연구실 이야기였다. "자동화된 설계와 실험 계획, 로봇시스템 자동 실행, 온라인 분석, 능동 학습으로 이어지는 4단계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불평 없이 돌아간다"는 표현을 읽으며, 주말에도 실험실 걱정을 하던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고민도 생긴다. 대규모언어모델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판단하거나, 그럴듯한 허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실험 설계에서부터 결과 해석까지, 사람의 비판적 사고와 검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질문의 힘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


"무엇보다 사람의 질문이 성패를 가른다"는 교수님의 지적이 가슴에 와닿았다. 좋은 프롬프트는 요구사항과 제약, 성공기준과 실패기준을 함께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도 연구자의 통찰력과 창의적 질문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최근 몇 년간 국가R&D 기획 현장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효율성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교육이 먼저, 환경은 그 다음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AI 도구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이 아니다.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결과를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대학이나 대기업 연구소가 아닌 중소 연구기관에서도 AI 공동연구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인프라 말이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교수님의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인간 연구자와 AI 공동연구자와의 협업은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갖춤에 있어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렇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멈출 수 없다. 문제는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타느냐다. 두려워하며 뒤처질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한다. AI가 내 연구실 동료가 되는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연구자들이 이 변화에 함께할 수 있도록 교육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한다.


물이 마른 수영복을 가방에 넣으며, 새로운 월요일이 시작되었다는 걸 느꼈다. AI와 함께하는 연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하루가.


출처 이상엽, "AI 공동연구자와의 협업이 필수인 시대", 서울경제 백상논단, 2025년 9월 1일
원문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527328?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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