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세상
며칠 전 일론 머스크가 발표한 테슬라 마스터 플랜 4부를 읽으면서, 나는 2006년 첫 번째 마스터 플랜을 처음 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는 골프카트나 만드는 정도로 여겨졌고, 테슬라는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고, 테슬라는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나드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이번 네 번째 마스터 플랜은 그보다 훨씬 더 야심찬 꿈을 담고 있다.
테슬라가 이번에 내세운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풍요(Sustainable Abundance)'다.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는 솔직히 의아했다. 경제학에서 '희소성'은 기본 전제 아닌가.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 수백 년간 경제학의 기초였는데, 갑자기 '풍요'라니.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가 발달하면서 물리적 제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의 손과 머리로만 할 수 있던 일들을 이제 기계가 대신한다. 그것도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전통적인 희소성 개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슬라는 이런 미래를 '지속 가능한 풍요'라고 명명하고, 그 중심에 인공지능과 로봇을 두었다.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회사로 스스로를 재정의한 셈이다.
테슬라의 이번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옵티머스(Optimus)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키 173센티미터에 몸무게 73킬로그램, 사람과 비슷한 체격의 이 로봇은 150파운드를 들어 올릴 수 있고, 45파운드를 들고 시속 5마일로 걸을 수 있다고 한다.
머스크는 2029년까지 이 로봇을 연간 100만 대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가격은 대당 2만에서 3만 달러. 현대 쏘나타 한 대 가격으로 24시간 일하는 로봇 직원을 고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처음에는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테슬라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6년 로드스터를 발표했을 때도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2016년 모델 3를 연간 50만 대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해냈다.
상상해보자. 2030년의 어느 공장에서 옵티머스 로봇들이 인간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모습을. 위험한 용접 작업은 로봇이 맡고, 정밀한 조립 작업에는 인간과 로봇이 협업한다. 야간에는 로봇들만 남아서 24시간 생산라인을 돌린다.
병원에서는 옵티머스가 침대 시트를 갈아주고, 환자들의 이동을 도와준다. 요양원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일상을 보살핀다. 건설 현장에서는 무거운 자재를 옮기고, 위험한 고소 작업을 대신한다.
이런 모습이 과연 현실이 될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국가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고, 일본은 고령화 사회 대응책으로 로봇 간병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우려도 크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등장한다면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테슬라의 과거 약속들을 생각하면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2016년에 발표한 완전 자율주행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고, 솔라루프나 로보택시 같은 프로젝트들도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번 옵티머스 계획도 과연 제때 실현될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해준다면,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산성이 향상되면 모든 사람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한국의 위치가 궁금하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로봇 친화적인 사회다. 공장 자동화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삼성과 LG 같은 기업들은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미 글로벌 리더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도 의미가 있다. 아직은 테슬라의 옵티머스만큼 화제를 모으지 못하지만, 기술력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비전의 차이다.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풍요'라는 거대한 서사를 제시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도 단순히 기술 개발을 넘어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테슬라 마스터 플랜 4부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인간을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듯이, 이번에는 AI와 로봇이 인간을 단순 반복 노동에서 해방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리는 없다. 기술적 한계도 있고, 사회적 저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테슬라의 이번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정말로 '지속 가능한 풍요'의 시대가 온다면,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 사회도 함께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즈음에는 옵티머스 같은 로봇이 일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들이 "옛날에는 사람이 위험한 일도 직접 했다고?" 하며 신기해할지도. 그런 미래가 과연 올까? 시간이 답을 줄 것이다.
2025년 9월, 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