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세상을 보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그날 KBS의 중계 제목은 "인공지능의 도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4대 1, 알파고의 압승이었다.
이세돌 9단은 그날의 충격을 이렇게 기억한다고 했다. "바둑에 있어서 컴퓨터 따위가 나보다 위에 있다면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9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았다. 1,000대가 넘는 로봇들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립, 도장, 운반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간 작업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AI의 학습 능력이었다. 처음에는 품질 검사에서 인간의 보정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AI가 스스로 기준을 업데이트한다. 심지어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소음까지 감지해낸다.
"AI가 그려준 미래 공장에도 사람이 있더라고요." 현장 엔지니어의 말이었다. "사람이 감독관처럼 모바일 기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모니터링하는 정도의 인력만 남아있었어요."
테슬라,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 거의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완전한 AI 팩토리. 그 안에서 인간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주문이 폭증하는 시대. 물류 창고는 이미 AI가 장악한 거대한 무대가 되었다. 사다리에 팔이 달린 형태의 로봇들이 선반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꺼내고, QR코드를 읽어가며 자율주행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만난 직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제가 처음 여기 일을 하러 왔을 때는 직접 카트를 끌고 가서 물건을 집어와야 했는데, 지금은 제 앞으로 물건을 가져와 주니까 훨씬 편해졌어요."
효율은 세 배가 되었다. 10명이 필요했던 일을 이제 3-4명이 처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일한 병목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AI가 방해받지 않도록 인간들의 작업 공간은 철제 울타리 밖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광경은 더욱 놀라웠다. 뇌졸중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AI가 5분 안에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이 환자는 얼만큼 살릴 수 있고 지금 시술을 해야 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신경외과 전문의는 말했다. "예전에는 일일이 파악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사진 찍으면 뭐 5분 안에 딱 나와요."
미국에서는 이미 진료 지침에 AI 활용이 명시되어 있다.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약품 운반도 이제 로봇의 몫이다. "지금 출발합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로봇이 알아서 자동문을 통과하고, 복도에서 사람들을 피하며,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탄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8명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이었다. AI를 활용해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업무를 처리한다. 시장 조사부터 코딩, 광고 제작까지 모든 것을 AI와 함께 해낸다.
"업무 관련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리서치를 해 줘." 이런 식으로 AI에게 맡기면, 딥리서치처럼 많은 사이트를 한꺼번에 뒤져준다. 시간 제약도 별로 받지 않는다.
코딩 효율은 인간의 10배 이상이다. "유저가 탈퇴를 요청한 경우에 처리할 수 있는 코드를 작성해 줘"라고 요청하면, AI가 계획을 세우고 생각하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인간은 그저 승인하거나 거부하기만 하면 된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배우 섭외부터 편집까지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AI로 만든 영상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낸다. 예산 조정이나 타게팅도 AI가 사람보다 더 잘한다.
부서도 직급도 무의미한 수평적 조직.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부서 여덟 개에 해당하는 효율을 보여준다.
영상 제작 현장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버추얼 아이돌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같은 AI 툴을 사용했을 때, 기본적인 결과물은 비슷하게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드저널 안에서 카메라를 보면서 움직이게 해주고, 눈의 크기 입술의 모양, 얼굴 각도까지 바꿀 수 있거든요." 세밀한 후작업을 통해 완전히 다른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가장 놀라운 건 제작 기간의 단축이었다. "예전에는 캐스팅 디자이너들한테 의뢰해서 시간을 기다렸다가 수정 보내고 하면 6개월씩 걸렸어요. 근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거의 하루에 끝나는 시대가 돼버렸죠."
6개월이 하루로. 적어도 30-40명 되는 CG 회사만이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두세 명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국제 컨퍼런스장. 청중들의 시선은 휴대폰으로 향한다. 귀를 가진 AI가 인간의 말을 받아적은 뒤 청중이 지정한 언어로 실시간 번역해준다. 수십 개 언어로 동시 통역도 문제없다.
하지만 표정과 몸짓, 말투 같은 비언어적 요소는 여전히 AI가 알 길이 없다. "연사들의 어투나 강조하는 부분들을 정확히 집어서 음성으로 말해주시잖아요. 텍스트로 보는 AI 번역에는 그런 면이 조금 없어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통역사 35%는 이미 일이 줄었다고 답했고, 19%는 단가가 내려갔다고 응답했다. AI는 언제 어디서나 의사소통을 돕는 개인화된 비서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규 채용의 급격한 감소다. 미국 빅테크들의 개발자 채용은 2022년 월 3,000명에서 올해 거의 0명으로 급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AI가 굉장히 잘하는 것들이 자료 조사, 인터넷에서 자료 조사하고 요약하고 정리하고 보고서 쓰고... 이런 일을 지금까지 누가 했느냐? 주니어들이 이런 일을 하면서 업무를 배워왔어요."
반면 경험 많은 개발자들의 몸값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완전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제 주니어들의 역할이 줄어들게 되죠. 주니어가 없이 시니어가 발전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앞으로 우리 산업은 주니어들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가?"
하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AI를 증폭기에 비유하는 관점이 흥미롭다.
"실력 차이가 5와 7인 사람이 있으면 2밖에 차이 안 나잖아요. 근데 여기에 증폭기 10배가 붙어요. 그럼 50이 되고 70이 되면 20 차이가 나잖아요. 개인의 차이가 극대화되는 거죠."
심지어 잘하는 사람은 더 높은 배수를 가져간다. "3과 7이면 3은 곱하기 3을 해요. 7은 곱하기 10을 해요. 9가 되고 70이 되는 거예요. 이건 말할 수 없는 차이죠."
버추얼 아이돌 제작 현장에서 본 것처럼, 같은 툴을 사용해도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결과물은 다르다. AI 시대에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 수석은 말했다. "100점짜리는 못 만들더라도 95점짜리에 도전하는 실질적 세계 2위 전략입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오히려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을 제외한 이등을 하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수 있거든요."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에 각종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잡을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동남아시아, 중동 시장이 주목받는다. "이 국가들의 열망은 엄청 강한데 함께할 파트너를 찾고 있어요. 정부와 기업들이 원팀으로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축산업에서 본 변화도 인상적이었다. 돼지 축사 천장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여러 마리가 함께 지나가도 한 마리씩 무게를 정확히 측정한다. 오차율 3%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저체중이 많이 나와도 돈을 까고 고체중이 많이 나와도 돈이 까이거든요." 정확한 데이터는 곧 수익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까 걱정할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농촌. 어쩌면 AI가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할 곳인지도 모른다.
"AR 고글에 체중 측정하는 AI가 들어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이 사람은 맨눈으로는 돼지 체중을 구분 못 하는데 그 고글로는 보이는 거죠. 20년 베테랑의 능력이거든요."
그럼에도 인간만의 영역은 남아있다. 이세돌 9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바둑처럼 룰이 명확하고 한정적일 때는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창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을 따라갈 수가 없죠."
영화 제작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AI로 대부분의 장면을 만들어도 마지막 편집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감각이 필요하다. "배우분들의 연기 한 프레임 막 옮기고 눈빛, 눈 깜빡이는 거 다 조절해서 연기를 만들어가는데, 아주 미세한 연기조차 되게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거든요."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시대다. "기회가 많고 아이디어 많은 사람들에게 끼지도 못했던 게임에 낄 수 있게 되는 거죠. 규모 때문에 어떤 걸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 게임에 같이 실력으로 붙을 수 있는 시대가 되는 거 같아요."
1인 창업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인 창업을 해서 뭐라도 뭔가 만들어서 한 달에 3만 원이라도 벌어보자. 그거를 하려면 혼자 그래픽 디자인도 해야 되고 개발도 해야 되고 마케팅도 해야 되고... 전체를 다 해봐야 될 거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포트폴리오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채용이 쉬울 거예요."
AI를 활용해 혼자서 전체 과정을 다 해본 경험. 그런 이력서라면 어느 회사를 가서도 환영받을 것이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까지도 진짜 세상을 경험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 친구들은 학교와 학원과 성적이라는 가상 현실에서 자라고 있는 거예요."
AI 시대에는 무엇을 잘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걸 잘해야 될 텐데 그게 뭔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아이들을 가상 현실에서 살짝 좀 풀어줘야 되지 않을까요?"
AI 기본소득이나 AI 연금 같은 분배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AI가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불러올 건 틀림없잖아요. 한 명이 10명 몫을 하게 되면, 그렇게 만들어진 생산의 혜택을 사회 전체가 고루 나눠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돼요."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받은 뮤지컬 '메이비 해피 엔딩'의 무대에는 은퇴한 AI 로봇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들을 연기하는 인간 배우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무대 밖 현실에서 인간은 갈림길에 서 있다. AI를 활용하며 함께 갈 것인가, AI에 밀려 뒤처질 것인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시작된 이야기. 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다음 수는 무엇일까.
참고자료 : KBS 다큐멘터리 "AI 인간을 대체하다"
� https://youtu.be/Jtiaawv0vhE?si=83b_HJ0zpZKG5t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