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공연문화예술계의 생태계 살리기
국민 모두가 ‘코로나 19’의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지만 음악, 연극, 무용, 전통예술, 미술, 전시, 축제 등 기초 공연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백여만 명은 그 정도가 심하다. 수많은 공연문화예술인들이 공연 중단으로 생계 문제를 넘어 생존이 막막하다. 임시 알바라도 하기 위해 편의점, 택배, 대리운전, 식당 보조원이 되려 해도 그마저 쉽지 않다. 심지어 자신의 천만 원짜리 악기를 헐 값에 팔아 생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43세인 성악가 모씨는 재작년까지 매월 오페라나 콘서트 한 두 편에 출연하고 시간강사를 하며 힘겹지만 아이 둘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다 2020. 3월부터 공연이 연기, 취소되더니 8월 막공(마지막 공연)하고 나선 2021년 현재까지 공연이 없다. 눈 앞이 캄캄하던 차에 친구 소개로 심야에 지하철 레일 닦는 일을 시작했다. 위험하지만 다른 알바보다 시급이 1.5배라서 어린 자녀를 생각하면 위험하더라도 일당 높은 쪽을 택해야 한다.
정부 방역지침 상 공연은 수용인원 준수, 21시 이후 금지, 띄워 앉기 등 사실상 공연을 할 수가 없다. 중소규모 공연을 한다 해도 수용 관객이 적으니 티켓 판매 수입으로는 출연자 인건비도 안되며, 혹시 코로나 확진자라도 나오면 공연 주최 측은 모든 책임과 사회적 손실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오롯이 받아내야 하니 사실 상 공연은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공연 취소나 금지된 공연단체에게 직접적인 피해 지원금도 주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정부 지원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선별적 공모작 지원과 약간의 인건비 지원이 전부이다. 그나마 이것도 못 받는 공연단체가 많다. 공연문화예술인들은 어렵다고 도와달라며 호소하거나 부탁할 줄도 잘 모르고, 항의 집회도 할 줄 몰라서 정부나 언론들도 그 어려움의 실상을 잘 모른다. 그러나 200만 공연문화예술인들은 일 년 이상 캄캄한 터널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지 못하고 어디까지 추락할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문화예술공연은 그 특성상 단 1회 또는 수회 공연으로 끝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공연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현재의 공연 중단, 공연 취소, 공연 적자인 상태가 지속되면 문화예술인들과 관련 종사자들은 공연 현장을 떠날지도 모르고 자칫 수십 년 가꿔온 문화예술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프랑스나 예술문화 선진국은 ‘코로나 19’ 방역대책과 행정명령에 의해 공연 중단, 취소가 불가피한 경우 적정한 보상을 통해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며 문화예술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을 막고 있다.
코로나 위기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공연단체 스스로 희망을 만드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부터 서울시향을 필두로 방역 기준을 맞춘 <코로나 방역 무대 기준>을 적용하여 확진자 발생 없는 라이브 공연을 했다. 서울시향의 공연 외형을 보면 관객 마스크 착용 및 체온 측정, 객석 간 띄어 앉기, 무대와 객석 간 거리두기, 현악기 연주자(마스크 씀)와 관악기 연주자(마스크 못씀) 간의 투명 차단막 설치 , 출연자 최소화 등 수많은 고민 끝에 방역 수칙을 지키는 최소한의 공연 매뉴얼을 만들었다. 공연 내용면에선 방역 기준을 맞추기 위한 관객과 출연자를 줄이되 공연 품질 유지를 위한 고심의 흔적들이 깔려 있다. 이러한 코로나 방역수칙에 맞춘 라이브 공연은 공연예술문화계의 새 기준이 되고 있다. 그 결과 방역면에선 확진자 발생이 전무한 방역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실제 관객들도 지하철, 버스, 음식점, 쇼핑공간, 학교, 직장 등 보다는 안심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방역 기준을 적용할 때 입장객 수의 제한과 객석 간 거리두기로 인해 수용 관객수가 급감해서 공연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공연문화예술단체들의 생태계라도 유지하려면 공연단체의 뜻을 모으고 당국과 협의해서 방역 기준을 공연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령 중점관리시설 기준을 관객이나 청중들이 호응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따라 금지시설인지 아닌지 정해야 한다. 또 개별 방역조치는 엄격히 지키면서 공연금지 해제 좌석 띄우기 완화, 공연시간 연장 등 공연산업에 알맞은 방역 기준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더욱이 공연단체가 방역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연 취소나 공연금지가 되면 그로 인한 직접 피해는 정부가 합리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공연단체들이 생존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공연문화예술단체들의 생존 노력도 시작되었다. 스스로 희망 만들기에 나서 라이브 공연 외에 랜선 공연, 스트리밍, 유튜브 영상 등 많은 방식의 온라인 공연을 통해서 희망의 싹을 볼 수 있다. 2020. 3월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국공립 공연장과 문화재단 등이 ‘무관중 온라인 공연’과 과거의 공연 기록을 네이버 티브이나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취지는 코로나로 공연 볼 기회가 없는 시민들에게 온라인으로나마 예술공연을 통한 위로를 주고, 공연을 준비했던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에게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발표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의 본질이라는 현장 대면이 없는데도 순수음악, 연극, 무용, 전통예술 등 ‘비인기 장르’ 공연의 실시간 접속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하는 사례가 잇달았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전면 취소되자 무료인 온라인으로나마 공연을 보며 시름을 달랜 소극적 관객과 공연을 보고 싶지만 현장에 올 수 없어서 실시간 온라인 공연을 관람하는 '적극적 온라인 관객’이 있음을 확인한 것은 수확이다.
작년 온라인 공연물을 제작한 ‘봄 아트 프로젝트’의 콘서트 <방구석 탈출 클래식>, ‘컴퍼니 숨’의 연극 <혜경궁 홍 씨>, ‘EMK 뮤지컬 컴퍼니’의 뮤지컬 <모차르트 10주년 기념공연> 등은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연문화예술의 방향성과 극복 과제를 시사한다. 그나마 현재의 온라인 공연은 규모와 자금력 있는 음악단체 이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설립한 국공립 공연단체이다. 국공립 공연단체는 예산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리스크
를 안고 실험적으로, 온라인 공연의 최적화 방안을 찾는 역할과 온라인 공연의 유료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전체의 위기극복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온라인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과 달리 문화예술공연의 온라인 유료화를 앞장서 개척하는 역할을 해서 민간단체들이 유료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민간에게 온라인 제작의 최적화와 온라인 공연물의 유료화 프로세스를 공유시키면 수많은 민간단체의 시행착오와 제작비용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런 후에 소규모 민간단체들이 저비용으로 온라인 공연물을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는 방안을 지원해주어 위기 종료 시까지 자생력을 갖춰주는 지원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이미 온라인 공연물 제작비용이 장난 아니게 올랐고 제작인력 부족 현상도 심각하여 공연 온라인화 자체가 쉽지도 않다. 장기적으로 예총 또는 공연문화예술단체가 연합하거나 협동조합 형태를 갖춰서 온라인 공연 공동제작팀과 네이버 티브이 같은 온라인 송출 플랫폼을 설립하여 조합 단체들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희망이 된다.
공연 문화 예술인들이 희망 만들기에 온 몸을 던지며 한 사람 한 사람, 이백만 명이 공연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시민들도 콘서트, 오페라, 연극, 무용, 축제, 전통예술, 전시 등이 없는 일상이 계속되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공연문화예술은 국가 문화 발전의 기초 토양이며 어떻게 보면 국가 경제의 완성도를 높이고 뒷받침하는 창의적 기술에 속한다. 더욱이 한번 무너진 후에 다시 원래대로 세우기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투입될지 가늠할 수 없다. 모두가 절벽 앞에 놓인 것 같은 코로나 위기에서 공연문화예술 생태계가 숨을 쉬며 생존을 할 수 있도록 정부 관련 부처는 귀를 기울이고 도움의 손을 내밀어 주자. 공연문화예술인들은 힘을 모아 작은 희망을 만들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 작은 희망 만들기를 실천할 때이다.
* 이 글은 2020.11월. 인터넷 신문에 게재한 글이며, 관련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일부 수정후 <브런치>
에 올립니다.
* ‘절망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사람’ : 정호승의 시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돼라’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