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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몬 Nov 22. 2021

대학로에 봄이 올까?

연극 <엄마의 레시피>를 보고



<엄마의 레시피 티켓>


사흘 전 G오페라 안 단장으로부터 11/19일 금요일 저녁에 김 작가쌤과 셋이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가자는 연락이 왔다. 늦가을 밤에 연극을 보는 즐거운 일이 갑자기 찾아왔다. 볼 연극은 '공간 아울'의 <엄마의 레시피>. 코로나 이후 죽은 거리가 싫어서 일 년 간 발길을 끊었던 대학로에서... 예상 밖 연극 관람에 기대와 즐거움이 솟아난다.


세명이니 와인 두병은 있어야지만 무거워서 한 병만 백팩에 담았다.

우리 셋은 코로나 이전엔 안 단장의 오페라 공연 전반을 사전 협의하느라 자주 만났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작년 7월 이후부터 올해 10월까지 단 1회만 공연을 했으니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문제는 단장이나 성악가, 연주자, 오케스트라단, 무대ㆍ음향업체 모두 밥 먹고 살 형편이 아니다. 식당도 어렵다지만 그나마 가게 문은 열지 않는가. 공연 문화예술단체는 방역수칙에 의해 강제 폐업이나 다름없다. 몇 백만 원의 보상이라고 받아봤자 출연료 지급하기 급급하다.


11월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 조치를 시작했는데 대학로 연극계의 변화는 어떤지 가서 보면 오페라 공연의 반응도 예측할 수 있을 테니 관심이 간다. 더욱이 연극계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사경을 헤멜 정도였으니 위드-코로나의 효과가 어떨지 관심이 컸다. 벼랑 끝에 선 연극인들, 무대마저 없어졌고 더욱이 연극배우들의 출연료는 열정 페이의 대명사, 최저 임금 아닌가. 그 설움과 고통은 컸다. 이제 벼랑 끝에서 나와야 할 때다.




   우리 셋은 오후 5시에 혜화역에서 만나 주변 극장들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몇 개 극장들은 상영 중이었고 극장 앞에는 티켓을 끊으려는 사람들 짧은 줄이 있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줄 선 관람객을 보다니!!


오후 6시쯤엔 대학로 전체에 인파가 늘고 티켓 박스도 분주하다. 작년 오후 5시 이후의 대학로와 정말 대비되는 광경이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모습이다. 상영 중인 '아트원 시어터'와 그 옆 극장 3개를 돌아보면서 극장 대표와 몇 마디 나눴다. 극장 대표는 이제 숨을 좀 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공연장 객석에 열 명은 나란히 앉을 수 있게 됐다며 반긴다. 사라진 일상이 가까이 오고 있는가?  오늘의 연극 관객은 코로나 이전과는 비교 조차 안된다고 한다. 위드- 코로나라고 해도 아직은 관객들이 조심스러울 테니까. 상반기만 해도 공연도 못하고 관객이 없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울음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었나. 이대로 계속 관람객이 늘어나면 좋겠다... 거꾸로 방역을 강화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2021.11.19. 밤 열 시 대학로 골목>




   뮤지컬 <창업>을 공연 중인 'SH아트홀' 대표를 만나 오페라 공연 대관을 협의할 겸 극장 내부도 돌아봤다.  이 극장은 대학로의 극장 중에서도 제법 객석 규모가 큰 350명 규모이고, 무대 층고도 9m나 된다. 뮤지컬 공연에 중요한 음향 장치와 잔향도 좋아서 뮤지컬 공연에는 안성맞춤인 극장이다. 이 극장의 대표는, 현재 추세대로 관객 수가 증가해 준다면, 3~4개월 후에는 의미 있는 관객수가 확보되고 내년에는 평년과 같은 공연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며 무대와 분장실을 보여준다.  


극장 밖으로 나와 김 작가쌤이 최근 연극계 설명을 해준다. 코로나 고통 기간 중에 극장이나 극단이 망한 데가 생겨서 희생 속에서도 구조조정이 여러 군데서 이뤄졌다며 극장 대형화와 작품 완성도가 향상되어 간다고 한다. 대형 극장과 극단 간의 선의의 경쟁도 조금 치열해지면서 관객들에게 품질 좋은 공연을 제공하려는 노력도 경쟁적이다. 전체적인 연극 품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관객들의 선택지가 넓어질 거라고 예상한다.


그리되면 전체 관객도 늘어나며, 공연 단체나 극장의 경영 손익도 개선되고, 연극인들의 수입 증가도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로 바뀌지 않을까 희망을 말한다. 물론 연극인들은 더욱더 연극의 품질과 재밌는 연극 작품을 만드는 데 매진할 것이며 특히 앞으로 뮤지컬 분야의 발전이 커질 거라고 강조한다.


                                                           <공간 아울 입구>


   우리가 볼 연극은 '공간 아울'의 <엄마의 레시피>라는 연극이다. 치매 걸린 할머니, 할머니 딸 , 할머니 손녀가 만들어 내는 가족 갈등 치유를 그린 연극이다. 캄캄한 무대에 불이 켜지고 흘러간 노래(제목 모름)가 나온다. 그 노래는 할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명절이 되어 찾아올 딸과 손녀를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딸은 할머니 집에 와서 반갑게 할머니를 만나지만 할머니의 치매 걱정 대신 자신의 사업 걱정이 더 크다. 자신의 사업은 지금 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딸은 할머니의 집을 팔아서 사업자금으로 하려 한다. 손녀는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인데 매년 3,000만 원씩의 유학 자금을 받으면서 남자 친구와 사귀며 임신을 했다. 딸과 손녀는 각자의 비밀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연극은 이 세명의 갈등과 번민을 할머니의 치매 현상을 반복시키며 딸과 손녀가 조금씩 각자의 고민을 말하게 만들어 갈등 구조를 해결한다. 손녀의 남자 친구와 할머니의 가출한 아들이 조연 역을 맡아 연극에 웃음과 활기를 준다. 출연, 할머니 김태리, 딸 허안영, 손녀 황보 다은, 손녀 남자 친구 정경훈, 할머니 아들(TV수리공) 엄지용이다. 관객은 100여 개 객석 중 달랑 22명, 아쉽다.


<엄마의 레시피>는 5명의 가족이 말 못 할 고민이 있어도 섣불리 고민을 꺼내기 조차 어려움을 보여준다. 할머니의 치매는 그런 고민이 드러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할머니, 딸 , 손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무엇일까. 할머니는 늘 명절날 가족이 함께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얘기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기쁨이요 즐거움이라고 하셨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먹으며 가족 간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같이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할머니는 아신다. 그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잊지 않으려 메모장에 기록하려다 잊고 또 기록하려 한다. 치매가 와도 할머니의 가족 사랑은 음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레시피는 끝내 기록을 못한다.




출연 배우들과 잠깐 인사를 나눈 후 셋이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저녁은 김 작가 쌤이 낸다고 했다. 맛과 향이 부드러워지게  와인 뚜껑을 먼저  두었다. 와인 '프리미 티보 디 만두 리아'는 이태리 만두리아 지역에서 프리미티보(미국 진판델과 동일 품종) 단일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허름한 중화 식당은 김 작가쌤이 애용하던 식당이다. 주인장이 10시까지만 영업한다길래 우리는 쉴새없이 대화를 하며 와인을 비웠다.


                                    < Primitivo Di Manduria. 14.5%. 코스트코 판가 19,900원 >


극작가 김쌤은 국내에서 드문 일본 W대학 연극학 박사다. 김쌤으로부터 연극이 히트할 경우의 얘기를 들었다. 연극은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히트작을 만들면 수년간 장기 공연을 하는데 장기 공연을 할수록 고정비가 분산되고 인건비 비중이 작아져서 이익이 커지는 구조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장기 공연을 하게 되면 이익 규모가 아주 커져서 극장이나 극단이 극장을 하나 더 살 정도의 대박을 친다. 연극 '라이어'가 좋은 예이다. '라이어'는 약 7년 간 롱런을 했고 극단은 '라이어' 한편으로 대학로에 극장을 마련했다. '난타'는 이미 잘 알려진 대박 성공 작품이며 연극인들의 꿈이 아닐까. 뮤지컬도 오페라에서 파생되었지만 '캣츠'나 '미스 사이공' 같은 작품은 수년간 장기 공연을 한 대박 작품이다. 이와 달리 오페라는 수십, 수백 년 전의 원작을 해석과 연출을 달리해서 공연하므로 새로운 작품을 보기 어렵고 오페라 애호층도 얕고 시장도 작아서 한 작품이 수년간 연속 장기 공연을 하긴 어렵다.


요즘 연극계엔 초대권이 없어졌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극단은 초대권을 발행했다. 속칭 삐끼들이 그 초대권을 암암리에 모으거나 거의 최저가로 사들여 티켓 세일 장사를 하는 바람에 대학로 연극의 입장권 수익은 티켓 세일 장사꾼들이 일부 먹고, 극장은 오히려 비싸다는 불평만 들었다. 대학로 극단과 극장들이 이를 막기 위해 초대권 발행을 금지해서 티켓 세일을 막았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세일이 보이긴 한다.




   셋은 와인을 마시면서 내년의 공연 작품에 대해 의논 후 재작년부터 공연했던 창작 오페라 '봄봄'을 어떻게 하면 세계적 오페라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지 각자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어느 듯 술도 동나고 중식당도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일어섰다. 셋이 걸어가면서 나이 들어서도 오페라를 할 수 있고 시나리오를 쓸 수 있어 부럽다고 내가 말하자 안단장이 언제까지나 같이 하기로 한 것 아니냐며 나를 슬쩍 끼워준다. 나이 들고 은퇴 후에도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은퇴 전의 직업을 계속하거나 새로운 직업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하고 싶은 건 예술과 문화, 종교와 봉사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아닐까. 셋 다 공감하며 고개 끄덕인다.


무척 오랜만에 와 본 대학로, 인파가 줄지어 혜화역 3번 입구로 흘러들어 간다. 그 광경을 웃으며 보면서 우리도 인파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대학로에 이제 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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