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달랐다. 남편은 대학을 가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돈을 벌지 않으셨다. 남편은 일찍부터 일을 했다.
남편은 20대 초반에 고시원에서 살았다고 했다. 밥은 가격이 가장 싼 것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20대에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고 30대에 집을 샀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는 이혼한 여동생과 조카들,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가 결혼을 생각했을 때 여동생이 돈이 없어서 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것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 그녀는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 집을 대출해서 여동생이 집 사는 것을 도와줬다. 그녀는 그 당시에 돈이 없었다.
난 이 사실을 3년 전에 알았다. 나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시누에게 가서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돈이 없다며 거절했다.
“언니는 비빌 친정이라도 있지 난 없어요.”
난 그녀의 이 말에 지금까지 그녀와 보낸 모든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집은 두 배 이상 올랐고 그녀는 그 집은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싼 외제차와 가전과 가구를 새로 샀다. 그녀의 수입으로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조카는 유학을 갔다. 그녀의 집은 점점 대출금이 늘어났다. 그녀는 우리에게 돌려줄 돈이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 집의 이자를 갚느라 원금도 갚지 못했다. 이자가 엄청나게 높았던 시기에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남편의 사업이 안 되면서 우리 집을 싸게 팔았다.
그가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시댁 식구들은 남편을 비난했다. 남편은 그 이후로 화를 내고 욕을 했다. 남편은 평생 자신의 가족들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들을 이제 안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도 화병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고생을 안 해봐서 좋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그때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는 그때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사랑해."
나는 요즘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난 안 사랑해.”
남편은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요즘은
“나도 진짜 많이 사랑하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대충 말한다. 안 사랑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가끔 나는 대충 말하는 그에게
“진짜 사랑하는 거 맞아?”
라고 물어보면 그는 한숨을 쉬며
“너 얼굴을 봐. 사랑할 수 있겠는지.”
난 이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말을 안 하던 때보다는 우리의 대화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