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가 있다.
나에겐 이 영화가 그런 영화였다.
제목만 보면 다소 선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40대, 20대, 10대 여자의 인생을 다룬 영화이다.
내 나이와 가장 비슷한 27살 주인공 아미의 이야기에서 묘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아미는 입봉 하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로, 언니인 영미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가수지망생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이모의 압박에 못 이겨 자주 선을 보러 나간다.
선을 본 남자는 32살 회계사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파견을 온 회계사. 이름은 오승원.
"수박이 왜 수박인 줄 아세요? 그럴 수박에~"라는 아재개그만 반복하는 따분한 남자였다.
선을 보고 난 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헤어지게 된다.
헤어짐의 슬픔에 허덕이고 있을 때 술집에서 승원을 우연히 또 만나게 되고 술김에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실연당하고 술 취해서 원나잇이라니
뻔한 시나리오의 뻔한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승원과의 관계는 점점 깊어지고 있었고, 어느 날 승원과 함께 국수를 먹는다. 승원은 아미의 젓가락질을 보며, 올바르게 젓가락질하는 법을 알려준다.
"자꾸 하면 익숙해져."
"됐어, 난 젓가락질 못해도 밥만 잘 먹어."
"잠깐은 불편해. 그것만 넘어가면 평생 원하는 거 하나도 안 흘리고 잡을 수 있어."
그리고 승원은 아미에게 프러포즈한다.
"아버지가 너 보고 싶으시대. 넌 거기서 글을 쓰든지 공부를 하든지 놀든지, 네 마음대로 해. 나는 맨날 국수만 말아줘도 돼."
"난 젓가락질도 잘 못하는데?"
"앞으로 잘할 거잖아. 아니야?"
아미는 프러포즈를 받고, 집 앞 계단에 앉아 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넌 왜 한숨질이야?"
"그러는 언니는?"
"아무래도 죽을 때가 됐나 보다."
"나도 프러포즈받고 이런 기분일 줄 몰랐어."
"너... 회계사?"
"근데 드라마 같은 데서는 여자들 반지 받고 무지 좋아하잖아. 나도 그럴 줄 알았거든? 근데 잘 모르겠어."
"이래서 세뇌 교육이 무서운 거라니까. 우리가 단세포냐?"
"아니었나?"
"하긴... 아무 생각 없을 때가 편하긴 했다."
"나도 결혼하면 편해질 거야. 꼭 그럴 거야."
감독이 아미에게 찾아와서 시나리오를 다시 작업하자고 제안한다. 아미는 자신이 결혼할 거라며 거절한다.
"감독님. 저 결혼해요. 절대 엎어지지 않을 사람이에요."
아미는 결혼하기 전, 승원과 함께 미국 비자 발급 준비를 한다.
"저, 현재 직업은?"
"전 시나리오 작가인데요."
"아, 그럼 어디 영화사 그런 데 소속되신 건가요?"
승원이 대신 프리랜서라고 답한다.
"프리랜서.. 조금 복잡한데.. 논술 학원 강사 어떠세요? 그게 미국 애들은 신분이 불확실하면 바로 불법 체류자 취급하거든요. 특히 결혼 안 한 여자는 더해요."
"근데 저는 학원 같은 데 가본 적도 없는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통장에 잔고는 얼마나?"
아미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럼 일단 네가 아미 씨 통장으로 3천 정도 입금해 놔. 뭐, 나머지는 아미 씨가 서류만 잘 챙겨 오시면 별문제 없을 거예요."
아미는 비자 면접을 보러 간다.
"미국엔 왜 가시는 겁니까?"
"결혼할 사람이 미국 시민권자라 그전에 좀 봐두려고요."
"김 선생님, 현재 3천만 원의 예금이 있으시고 직업은 강사, 미국은 견문을 넓히는 차원에서 방문하시는 거 맞죠?"
아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비자 면접 이후 아미는 승원의 집으로 향한다.
"승원 씨 나 할 얘기가 있어.
난 논술 학원 강사가 아니야 3천만 원도 없고."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해. "
"그건 내가 아니야."
"네가 솔직해서 걸리는 거지."
승원과 사귀는 동안 전남자친구와 잤던 사실을 이야기하며 아미는 승원과 헤어지게 된다.
아미는 작가의 일에 열중하며, 글을 다시 써서 감독을 찾아간다.
"너 결혼한다며?"
"아직 때가 아닌가 보죠!"
"아니, 그, 절대로 안 엎어질 사람이라고..."
"세상에 안 엎어질 사람이 어디 있어요!"
승원이 아미의 집 앞에 찾아온다.
"발령이 좀 당겨지게 됐어 다음 달엔 미국에 있을 거야."
"자길 힘들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었어. 너무 내 생각만 했어,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할 거 없어. 나도 너무 내 생각만 한 건지 몰라."
프러포즈 반지를 돌려주며 승원은 말한다.
"이거 네 거야. 나 너 만나는 동안 진짜 행복했다.
아미야. 앞으로 우리 만나지 말자. 뒤로 만나자."
마지막까지 아재개그를 하는 승원이었다.
마지막 엔딩장면이 참 좋았다.
아미가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사람이 많은 도심 속을 씩씩하게 걸어간다.
'여전히 나는 머리 하나에도 헷갈린다.
그렇지만 이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언젠가 자랄 거고 마음에 안 들면 또 바꾸면 된다. 나는 자신 있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다.
앞으로도 마음 아픈 일들이 많겠지만 일단은 씩씩하게 웃으면서 걸어가는 거다.
그래, 인생 뭐 있어? 그냥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