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리꽃 이글거리던 길

— 가상성 1_배추흰나비와 순화이트 뮤즈

by agon바두슴

모든 것은 서로에게서 비롯되고,
나는 그대의 기원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합니다.
돌아감은 되돌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의 기억입니다.


오래전부터 배추흰나비의 날개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 미세한 떨림은 발목까지 찰랑이던 물소리를 건너왔던 기억과 겹칩니다.
그날의 햇빛, 그늘진 흙냄새, 무심히 피어오른 장다리꽃들이
모두 하나의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돌아보면 뜻 모를 말들이 생각 속에서 길을 잃고,

긴 침묵을 건너는 끝에서야
무언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모든 일은 지금도 여전히 가상성(virtualité)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현실과 이미지의 틈

돌 하나가 굴러 떨어집니다.
한 세월, 뿌리를 움켜쥔 불꽃같은 땅의 후예들이
그 안에서 천천히 깨어납니다.
그들의 흔적은 현실이라기보다,
기억과 이미지가 서로 반사되는 거울의 잔상 같습니다.

플루서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물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의 이미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 빌렘 플루서, 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그 말처럼, 나의 나비는 실재의 나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전 내 시선이 남긴 흔적,
기억이 만들어낸 빛의 복제,
그러나 여전히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존재입니다.


뮤즈의 곡선 위에서


이런 사건은 언제나 뮤즈의 팽팽한 곡선 위에서만 생생합니다.

그녀는 시간 속의 얼굴이 아니라 표명이고

고이 전승된 몸짓으로
감각이 만들어 흘려보내는 하나의 가능태,
가상의 빛 속에서 금부터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플루서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virtualité는 단순한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공간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세계를 새로 창조한다.”


그렇다면, 나의 ‘가상’은 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보려는 몸의 언어이며,
이 세상을 새로이 해석하려는 마음의 실험입니다.


겨울을 견딘 장다리꽃들

그늘진 좁은 길들은 풀나무에 기대어
겨울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글거리듯 피어난 장다리꽃 위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듭니다.

그 나비는 실재의 생명일까요,
아니면 나의 기억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virtualité일까요.
아마도 그 둘은 이미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같은 바람 속에 섞여 있을 것입니다.

“가상은 현실의 모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다시 ‘쓰기’ 위해
선택한 또 하나의 문법이다.” — 빌렘 플루서


그 길 위에서 나는
현실과 꿈, 물과 빛, 나와 그대의 경계를 잃어버립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송이 흰꽃처럼,
나의 가상이 현실이 됩니다.


가상성의 시학(詩學)

플루서의 말처럼, 가상은 단지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다시 쓰는 언어이자, 인간의 새로운 창조적 차원이다.


가상 속에서 인간은 ‘이미 주어진 세계’를 다시 구성하고, 그 속에서 감정·기억·사유를 새롭게 배치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가상적 현실’의 문턱에서,
감각과 사유가 교차하는 순간의 빛을 붙잡고자 했다.


나비의 날개, 물소리, 장다리꽃, 그리고 뮤즈 —
이 모든 것은 실재와 상상,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virtualité의 장면(scene)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감정의 진동, 즉 존재의 떨림을 느낀다.


그 떨림이 바로 ‘가상성의 시학’이자,
내가 지금 여기서 쓰는 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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