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것들은 서로의 살을 먹는다.

관계는 늘, 먼저 남의 살을 계산한다

by agon바두슴
궁평항 서해랑길 락 오브 우담바라

세상은 균형으로 시작해서
균형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 균형은
의미도, 정의도 아니다.
살의 분배다.


삶과 죽음,
부와 노동,
명예와 출세,
소유와 봉사,
생로병사.


이 모든 것은
사상 이전에
몸에서 먼저 계산된다.
버틸 수 있으면 더 원하고,
버티지 못하면 세계는 잔인하게 조정된다.


균형은 생각하지 않는다.
균형은 작동한다.
우리는 대부분
이 작동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를 넘기기 위해 하루를 소모하고,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반복한다.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일들,
다시 하지 않으면
곧바로 무너지는 상태.
살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으며
하루를 연장한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까울수록 관계는
서로를 뜯어먹고 사는 구조가 된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것들은
가장 많은 요구를 하고
가장 적은 예의를 남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갉아먹고,
책임이라는 말로
살을 나눠 가진다.
관계가
유지의 문제로만 남을 때,
사람은 쉽게
대체 가능한 몸이 된다.


가까움은 따뜻하지 않다.
가까움은 잔혹하다.
어떤 관계는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집, 역할, 규칙,
쉽게 무너지지 않는 형식들.
그 형식은
우리를 잠시 보호하지만,
그 안에서도
살은 계속 소모된다.
만들었다고 믿는 것들은
대개
우리보다 오래 남기 위해
우리를 먼저 닳게 한다.


어느 순간
내 직감이 기준이 되는 때가 온다.


설명 이전에
몸이 먼저 멈춰 세운다.
여기까지는 아니다.
이 이상은 내 살이 깎인다.
그때가
덜어내야 할 시점이다.


덜어냄은 미덕이 아니다.
살이 더는 버티지 않겠다는
정확한 판단이다.
균형은 혼자서 유지되지 않는다.


균형은 언제나
관계로 번진다.


그 첫 번째가 가족이다.
가족은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다.
서로의 살을 가장 오래,
가장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관계다.
누군가는 더 견디고,
누군가는 먼저 무너진다.
그 차이 위에서
가족이라는 구조는 유지된다.
그래서 가족은 늘 아프다.
아프지 않다면
이미 관계가 끝난 것이다.


그러나 드물게
우리는
유지도, 제작도 아닌
다른 방식으로
관계 앞에 선다.
결과를 장담하지 않고,
대신할 수 없으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드러내는 순간.
그 순간은
효율도, 안정도 없다.
대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가장 늦게,
가장 자주
회피된다.


삶은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
살이 남아 있는 쪽으로
계속 방향을 바꿀 뿐이다.


그리고
내 직감이 표준이 되어
덜어내는 쪽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유지와 제작을 넘어
한 번쯤
자기 이름으로
서 있을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소진이 아니라
지속의 형태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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