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순간들이 삶의 의미
우리는
시작을 선택하지 않았고
끝을 결정할 수도 없다.
어느 날 이미 길 위에 있었고,
어느 날 멈추게 되리라는 사실만
멀리서 조용히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은
끝의 끝을 기다리기보다
중간 어디쯤에 작은 쉼표를 찍으며 산다.
여기까지라고,
이쯤이면 괜찮다고.
하루를 살아내는 반복이 있고,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남기는 흔적이 있다.
또 그 사이 어딘가에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었는데
한 발 앞으로 나서는 순간이 있다.
어떤 일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티게 하고,
어떤 일은
내가 이곳에 살았다는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어떤 순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서
나를 완전히 드러낸다.
그 순간에는
계획도 설명도 없다.
다만 떠나지 않는 선택만 있다.
돌아설 수 있었던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무는 일.
누군가의 곁에
이유 없이 남아 있는 일.
그것은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 결과에 가깝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선택을 선의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아주 조용한 약속일지도 모른다.
어떤 만남은
인생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 비틀어 놓는다.
그 이후로는
이전처럼 무심할 수 없게 된다.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은
대개 이유를 갖고 있다.
화가 날 때는
무언가 소중한 것이
제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몸은 말보다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웃고, 놀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속에서
사람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함께 웃는 날과
함께 울음을 삼키는 날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들.
그런 시간이 남아 있다면
이 세계는 아직
혼자가 아니다.
사람은 언젠가
다시 기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손을 내밀고,
언젠가
그 손을 붙잡을 준비를 한다.
그 오가는 손길 속에서
서로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끝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성취를 세지 않는다.
대신
머물렀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지.
같은 방향을
잠시라도 바라보고 있었는지.
끝의 끝에서
사람은 답을 찾기보다
조용히 돌아본다.
내 삶이
이 세계에
어떤 온도로 닿아 있었는지를.
우리는 끝을 선택할 수 없지만
어디에 머물렀는지는
끝에서 분명해진다.